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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포트 Feb 20. 2024

우리가 숲을 찾는 이유


꽤 오랫동안 숲에 발길을 끊었던 적 있었다. 미디어에서 들려온 좋지 않은 소식 때문이었다. 한 여교사가 홀로 둘레길을 걷다가 참혹한 일을 겪은 것이었는데,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내가 허구한 날 숲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잘 알고 계시던 우리 엄마는, 뉴스를 보자마자 곧장 나에게 전화하셔서 혼자서는 절대 숲에 오르지 말라 당부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 사건 이후 실제로 얼마간 숲을 오르지 못했다. 물론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악(惡) 앞에서 이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음에 나는 슬프고 화가 났다. 그리고 슬프고 화내는 것 밖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더 슬프고 화가 났다. 사실 나는 뉴스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세상 물정에 어둡고, 어쩌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무거운 주제를 오래 생각하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지만, 지난해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과 성폭행 사건에서 묻지마 살인으로 이어진 이 사건에 대해서는, 나도 한참 동안이나 애석해하고 마음 아파했다.







세상이 제법 쌀쌀한 기운으로 채워지기 시작할 때쯤, 홀로 숲에 오를 용기가 조금 생겼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에 호신용 무기를 챙겨가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유난인가 싶기도 하여 차라리 주위를 더 자주 살피며 걷고, 유사시 그동안 갈고닦아 왔던 달리기 실력으로 전력질주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숲에 가지 않는 동안 헬스장에서 매일 러닝머신을 뛰었더랬다.) 그렇게 큰 마음먹고 오른 숲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그 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초록으로 가득했던 나무가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자연스러운 변화도 새로웠지만, 나뭇 가지고 나뭇잎이고 어수선하게 깔려있던 숲길이 인위적인 손길이라도 닿은 듯 깨끗하게 닦여 있던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가 숲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지?' 속으로 생각하며 계속 오르다 보니 어렵지 않게 숲길 변천사를 이룩해 낸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말끔하게 닦인 길

그 정체는 바로, 매일 오후 1시와 3시가 되면 무리를 이루어 초록색 빗자루로 길을 쓸고, 신발을 벤치 옆에 가지런히 벗어 두고서는 맨발로 몇 번이고 길을 반복해서 걷던, 어싱(Earthing) 동호회 회원들의 소행이었다. 나는 무해해 보이는 동행이 생겼다는 사실에 그만 마음이 푹 놓였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이들의 뒤를 좇아 숲길 초입에서부터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며 오랜만에 숲의 싱그러움을 한 껏 흡수했다.


오랜만에 찾은 숲에는 전에 없던 손님도 와있었다. 꽁지가 푸르르고, 유난히 높은 주파수로 짹짹거리던 박새였다. (처음에 이 친구들이 박새인지 몰라서 내 마음대로 '개똥지빠귀'라 부르며 인사를 하곤 했다. 미안하다 박새야.) 오랜만에 와서 보니 이 박새라는 놈들이 작은 숲에 전세라도 낸 듯 유난히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고, 뭐가 그리 바쁜지 분주하게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날아다니곤 했다. 어쩔 때 보면 숲의 터줏대감인 까치와 영역 싸움이라도 하는 양 서로를 향해 짹짹대며 대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들을 관찰하는 게 그리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저 보고 있노라면 나를 붙잡고 있던 일상적인 일들을 완전히 잊게 되었다. 이때만큼은 어떠한 걱정도, 불안도 없었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쳐 존재조차 깜빡했던 것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들여다보면 모두가, 너무도 신기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도, 저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저 새삼스러웠다.


삶의 이유는 어쩌면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그저 느끼고 향유하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숲에 다니며 세상의 악(惡)과 어지러운 상념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새, 숲의 냄새, 변하는 나무의 모습에 집중할 때, '이것으로 되었다. 나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던 것처럼. 자연에는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서 충만하게 하는 어떠한 삶의 근원 같은 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계속 숲을 계속 찾았던 이유고, 사람들이 어싱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맨발로 땅에 직접 맞닿으려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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