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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포트 Mar 04. 2024

숲의 진짜 모습


사계절을 생각하고 있자니 궁금해지는 게 한 가지 있다. 왜 봄여름가을겨울은 1년 안에 꼭 들어맞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한 해의 시작은 1월부터이고 1월은 겨울인데, 왜 우리는 사계절을 '겨울-봄-여름-가을'이라고 순서를 매기지 않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 부르는 걸까. 하긴, 뭐 세상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모양새가 더 이상할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작년 12월 한 달 동안 함께한, 아니 함께하지 않은 날들이 훨씬 많았던 나의 작은 숲의 겨울은 이랬다.


12월 초 숲의 모습


한 해의 시작을 알리고 그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계절. 나의 숲에도 겨울은 왔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겨울비로 나는 일 년 중 네 번째 계절인지 첫 번째 계절인지 모를 그 계절을 맞이했다. 12월 초까지는 그럭저럭 날씨가 괜찮아서 부지런히 숲에 다니곤 했는데, 초겨울의 숲길은 나무가 잔뜩 벗어둔 마른 낙엽으로 바닥이 수북이 덮여있었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숲 산책을 마치고 나올 때면, 내 신발은 낙엽 찌꺼기와 흙으로 엉망진창이 되곤 했다.


12월 중순 숲의 모습

12월 중순부터는 걸핏하면 눈이 내렸다. 어쩔 때는 날씨가 하도 궂어 아예 주민센터에서 숲의 입구를 며칠 째 막아 두기도 했고, 다른 날들은 숲의 경사진 입구가 꽁꽁 얼어버려 도저히 오를 엄두조차 못 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다니던 도서관도 숲길 대신 아스팔트 길을 통해 다녔고, 나의 작은 숲은 그저 먼발치서 바라만 보았다.


나무의 진짜 본모습은 비로소 겨울이 돼서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동일 작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의 진짜 모습을 눈여겨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애처로워 보이는 나무들을 먼발치서나마 바라보다가,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를 잡아 물었다. 내 삶이라는 작은 숲에 겨울이 닥쳤을 때, 매서운 한파로 화려한 꽃과 푸르른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차디찬 공기에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고라도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의 모습을 자주 들여다 보고 또 함께 있어 주었던가. 나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던가. 아, 애석하게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시기가 닥칠때 마다 나는 스스로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한파가 들이닥쳤을 때 숲에 발길을 뚝 끊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 본모습을 마주하는 게 매번 그렇게 두려웠고, 그래서 내 삶에 겨울이 닥칠 때 마다 그 힘든 시간을, 외면하며 보내곤 했었다.


우리의 세상은 벌써 3월에 들어서 도처가 봄의 설렘으로 꽉 찼는데. 나는 아직도 긴 긴 겨울의 중턱을 지나는 중이다. 내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겨울처럼 여전히 춥고 버거우며,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의 본모습을 마주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라도 잘 돌봐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처럼 움츠러들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라, 더 자주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마주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나에게도 다시 봄이 오면, '나의 작은 숲'이 그랬듯 내 속에도 푸르른 쑥이 솟아나고 어느샌가 모르게 여름이 찾아와 새하얀 아카시아 꽃과 찔레꽃 따위를 피워 낼 테지. 무엇보다 나에게도 길고양이, 까치, 청설모, 박새가 찾아오면 기꺼이 따수운 품을 내어줄 수도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그해 겨울 12월 23일. 나는 세종 자취방을 정리하고 남쪽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나의 작은 숲'과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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