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울은, 말 그대로 화려했다. 내가 화려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씀씀이가 워낙 큰 탓에 쥐뿔만큼 들어오는 내 통장 사정은 늘 아슬아슬했고, 미래는 흐릿했으며, 감정은 종종 고꾸라졌지만, 그래도 그 모든 걸 서울이라는 도시가 좀 덜 창피하게 감싸줬달까.
서울과 나는 꽤 오랜 연애를 했다. 30년. 쪽쪽이를 물고, 놀이터에서 뭣도 모른 채 손잡고 놀던 동네 친구처럼, 서울은 나와 함께 자라났고 나는 서울 안에서 크고 작은 미래를 꿈꿨다. 넘어지고, 깨지고, 또 깨지고, 또 또 깨져도, 다시 일어날 때마다 서울이 곁에 있었다. 병원을 가도 서울, 상담을 받아도 서울, 새벽에 울어도 서울.
솔직히 말해서, 서울이 주는 인프라는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영화 보고 싶으면 3분 거리에 영화관이, 미술관과 박물관은 넘쳐나고, 옷 살 곳은 많고, 식당은 미어터지고, 대중교통은 환승의 신이 강림해주시고. 운전 안 해도 되는 도시!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나는 휴식조차 굳이 서울 밖에서 찾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쉼도, 위로도, 서울 안에서 충분히 해결되는 사람이었으니까. 혼자서 영화를 보고, 혼자서 미술관을 거닐고, 혼자서 한강 산책하며 바람맞다가… 감성 과몰입하면 맥주 한 캔 들고 울기 딱 좋은 도시. 나름 혼자 잘 노는 서울 시민, 그게 나였다.
그렇게 30년을 붙어살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게 많아졌다. 서울의 구 이름 외우기 퀴즈는 거의 만점이고, 강북 강남 구별은 눈 감고도 가능하며, 핫플레이스나 찐 맛집 탐방은 내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서울 가이드 전문, 그게 바로 접니다!”
뭐 이런 명함이라도 팠어야 했나.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어느 날. 내 인생이 스윽 틀어지더니, 경상남도 제일 밑에 있는 섬. 제주도 다음으로 크다는 섬. 주변에 영화관이나 쇼핑몰은커녕 시내로 나가기 위한 대중교통 한 번 타기 쉽지 않은 거제도, 그 거제도에 나는 불시착해버리고 만다.
과연, 나는 이 낯선 섬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