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겠다. 거제로 가자.”
엄마는 마치 사극의 대사처럼 단호하게 선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대역죄라도 지었나 싶었다. 아니, 잘못한 것을 찾자면, 없잖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는 거 자체’
그때 나는 말 그대로 고장 나 있었다. 정확히는, 고장이라기보다 ‘망가진 뒤 적당히 고쳐진 상태에서 다시 고장 나 방치된 전자기기’. 누르면 울고, 말 걸면 터지고, 일어나면 누워야 하는 상태. 나는 움직이긴 했지만, 그건 생명 활동이라기보다 잔여 기능에 가까웠다. 육체는 겨우 꿈틀거렸지만, 정신은 이미 이성을 잃어버진 좀비. 그게 나였다.
매일 밤, 소주 네 병. 빠르면 30분 컷, 길어도 45분이면 그 양의 소주는 바닥을 찍었다. 자해는 마치 루틴처럼 반복됐고, 폭식은 끊이지 않았으며, 공황은 아무 때나 출몰했다. 눈물은 고갈됐고, 감정은 냉동보관 중이었다. 누가 나에게 “그만 좀 해라”고 외치기 전에, 내가 먼저 외치고 싶었다. “그만 좀 살아라, 나야.”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드디어 체념했는지 모든 걸 생략해버렸다. 이제까지 내 인생을 진두지휘하며 분초 단위로 계획표를 짜던 그 엄마가,
“다 그만하고, 이제 쉬어.”
세상에. 그분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나도 놀라고, 아마 말을 꺼낸 장본인인 엄마도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그 '그만두기'의 장소가…. 하필이면 거제라고?
거제도. 이름은 참 예쁘다. 동화에 나올 법한 이름이다. 하지만 나에게 거제는 부모님이 ‘우리도 이제 좀 한적하게 살아보자’라며 선택한 은퇴용 시골집의 대명사였다. 정 많고 풀 많고, 사람은 별로 없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정 따위? 없었다. 심지어 거제야 고마워 같은 노래도 없잖아.
게다가 서울에서 거제를 간다는 건, 거의 인생 게임에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수준이었다. KTX? 없다. 고속터미널? 아니다. 다 쓰러져가는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해 4시간 20분. 도착하면 거의 초죽음이 된다. 부모님 집에서 시내 가는 건 마치 퀘스트다. 자차가 없으면 2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야 하고, 그걸 놓치면 그날 일정은 실패다.
서울은 한 걸음만 나가면 카페, 병원, 지하철, 영화관, 편의점, 강아지 카페, 고양이 카페, 사람 많은 곳, 사람 없는 곳…. 뭐든 다 있었다.
거제는? 시내를 벗어나면 바다 아니면 풀. 아니면 풀 속 컨테이너. 누가 거기서 일하는지도 모를 그 철제 상자들 사이로 바람만 분다. 그게 끝이다. 바람이 끝판왕이다.
나의 불안은 상승했다.
“내가 여길 가면… 시골 사람 되는 거 아니야? 내 꿈은? 내 상담사는? 내 서울살이의 로망은 다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러나 아무리 불안해도 이미 버스는 떠났다. 엄마의 명령 + 아빠의 묵인 = 완벽한 강제 이사. 나의 의사를 물었어도, 의미 없는 민주주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내가 서울을 선택한다면 “지금 상태론 안 돼”라는 회심의 한마디가 날아온다.
살 수가 없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쉼.
그래, 쉬자. 사람들이 일부러 휴가 내서 오는 거제도잖아. 나도 힐링 좀 해보자고. 설마 거제가 사람을 잡아먹겠어?
응, 나는 잡아먹혔다.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한 번 ‘쉬러’ 왔던 거제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눌러앉자”라는 생각이 들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