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쓸데없는 짐을 전부 정리했다. 버리고, 나누고, 또 버렸다. 마지막에 내게 남은 건, 1인이 쓰기에 딱 알맞은 살림살이 몇 개와 사랑둥이 고양이, 레오 한 마리가 전부였다.
짐은 작은 트럭에 실려 먼저 떠났고, 나와 레오는 부모님 차에 실려 거제로 향했다. 서울에서 거제로, 정확히는 ‘다이어트와 고독을 위한 자발적 유배 생활’의 시작이었다.
보통 ‘시골로 내려간다’고 하면, 그런 풍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작은 벽돌집. 굽이굽이 구부러진 산골. 할머니가 하나쯤 운영하고 있을 법한 구멍가게. 약국은 없고 보건소는 꼭 있음. 논과 밭이 산을 감싸고, 트랙터가 ‘부우웅’거리며 2차선 도로를 당당하게 점령하고 있는 풍경. 그런데 나는 도착하자마자 멘붕을 겪었다.
8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그것도 11동.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건 벼가 아니라 365일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던 18홀 크기의 골프장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경운기 대신 외제차들이 빼곡했고, 주민의 반은 서울에서 이사 온 ‘예비 은퇴민’들이란다.
..... 어라? 이거 내가 생각한 시골 아니잖아?
그나마 서울과 다른 점이라면, 바다가 보인다는 것. 바람이 사람을 혼내는 급이라는 것. 그리고 시내에 나가려면 ‘걸어갈 수는 있지만, 그것은 등산이다’라는 점. (참고로 이 아파트는 진짜 산꼭대기에 있다. 부동산 광고에 “탁 트인 전망!”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건 곧 “택배가 로켓으로 오기 힘듦”이라는 뜻이었다.)
날씨는 또 어떻고. 조금만 흐리면 산에서 구름이 내려와 아파트 전체를 감싼다. 말 그대로 구름 속에 사는 생활. 신선놀음 한다며 주민들끼리 웃지만, 나는 그냥... ‘산간지방이잖아?’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신선놀음은 둘째치고, 빨래가 안 마른다. 방과 함께 몸 전체가 눅눅하다.
그렇게, 남 부럽지 않던 대도시 라이프는 한순간에 구름 낀 산속 생활로 전환되었다. 레오와 나는 택배보다 느린 적응력을 가진 채로, 매일같이 새로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사 온 첫날 밤, 레오에게 속삭였던 그 말을 떠올린다.
“레오야, 우리… 여기서 잘 살 수 있겠지?”
그 말에 레오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는 서울이든 거제든, 밥만 잘 나오는 곳이면 상관없는 것 같다. 나도 좀 그래야 할 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