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니야.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에게 자해란 나를 따라다니는,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 일종의 안정이었고, 폭력적인 감정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하게 허용된 통로였다.
나는 자해를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죽고 싶다’는 말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 둘은 다르다고, 그건 다르다고, 스스로를 여러 번 납득시켰다.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살고 있는 게 너무 힘들 뿐이었다. 그게 진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감정이 자해로는 해소되지 않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칼을 들고도, 상처를 내고도, 가슴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피는 흘렀지만,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죽고 싶은 거야?”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 물음 자체가 낯설고, 그 감정이 낯설었다. 나는 자해는 했지만 죽음을 바라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죽음을 상상하는 일이 편해졌다. 쌩쌩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드는 상상, 깊은 물 아래로 가라앉는 상상,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상상. 상상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했다. 죽은 눈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안정처럼 느껴졌다.
아무 감정도 없이 텅 빈 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화도 나지 않고, 기쁨도 없고, 기억도 흐릿한 그런 상태. 나는 그 무감각 속에 머물렀다. 그게 평온이라고 믿었다. 그게 ‘내가 버티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어느 날부터 매일 같이 돌아오는 밤이 무서워졌다.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그 끝에서 정말 내가 나를 죽일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왔다. 울다 웃고, 괜찮다가 무너지고, 버티겠다면서도 금세 포기하고, 도망치듯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 목구멍까지 차오른 공허. 이성이 말린다. 안 돼, 아직은. 그러다 감정이 말한다. 괜찮아, 이제 충분히 아팠잖아. 그 말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안에서 충돌했다. 나는 오늘도 나를 설득해야만 했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아니야, 아직, 살고 싶어.
그 싸움은 매일 밤 되풀이되었고, 결국 나는 내가 나를 죽일까봐 무서워졌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를 해치게 될까 봐, 내가 나를 없애버릴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마지막 선이었다. 그 경계에 서서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도움을 받아야겠다.”
“누군가를 붙잡아야겠다.”
“이제는 혼자 못 버티겠다.”
그건 인정이었다.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정. 내가 약하다는 것, 내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에 대한.
그제야 조금,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정의 진폭은 여전히 컸지만, 그 사이에 조금은 ‘살고 싶다’는 마음이 숨을 틔워냈다.
나는 아직도 힘들다. 아직도 매일,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싸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싸움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오래 버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