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0의 바다
거제는 섬 전체가 휴양지라서 그런지, 대형카페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대형카페의 특징이라면, 일단 주차장이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대형카페는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왜냐고? 바다를 앞에 둔 뷰 맛집이니까. 걸어서 가겠다고 하면, 그건 거의 국토대장정 일부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제에 막 내려왔을 때, 목욕탕이나 이모 모임에서 흘러나오는 카페 이야기는 나에게 거의 외국어였다.
“○○ 카페는 비싼데 커피가 맛있다더라.”
“△△에 새로 카페 생겼는데 가봐야겠다더라.”
거제의 지리를 몰랐던 나는 ‘○○…. △△….’ 하며 머릿속에서 영어 단어처럼 받아적고만 있었다. 가끔은 내가 외국인도 아닌데 외국어를 듣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곳에서 서울촌놈인 내가 드디어 거제 대형카페, 엄0의 바다에 첫발을 디뎠다. 산꼭대기 우리 집에서도 낮이면 하얗게, 밤이면 반짝반짝 보이던 신생 카페였다. 주차장은 몇 단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일반 차량은 물론 근처 부산, 창원에서 오는 대형 버스까지 세울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카페 주변은 대나무 숲으로 감싸져 있었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탁 트인 바다보다 많은 독특한 조각상들이었다. 도대체 몇 개인지 세다가 포기했다.
엄마의 발걸음을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커져 있던 눈이 한층 더 커졌다. 사방이 통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이고, 손님들을 위한 소파는 ‘거실형’이 아니라 거의 ‘라운지형’ 크기. 대체 몇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인지 감이 안 올 정도였다. 더 놀라운 건, 주말이면 이 넓은 공간이 꽉 찬다는 사실. ‘여간해서는 채우기 힘들 텐데…’ 싶었는데, 유능한 사람이 많은지 이곳은 그걸 매주 해내고 있었다.
카페 한쪽에는 각종 빵과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었고, 그 향과 모양이 후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했다. 다이어트 결심은 순식간에 위태로워졌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음료만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니면 칼로리0의 티! 짤랑거리는 얼음과 시원한 한 모금, 그리고 넘실대는 거제 바다의 풍경이 카페의 점수를 순식간에 올려줬다.
이곳을 이모즈랑 간다? 그날은 아빠들이 다 굶는 날이다. 대장 이모의 지휘 아래 빵이 쏟아지듯 쟁반에 담기고, 미미 이모가 맡은 자리에 앉으면 수다 폭탄이 시작된다.
“이 얘기만 하고 가자.”
그건 시작일 뿐. 우리는 가야 할 시간도, 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입을 쉬지 않는다.
거제에 내려와 보니 이 카페가 제일 만만한 카페가 돼버렸다. 날이 꾸물거릴 때나, 집에 있기 심심할 때나, 밥을 먹고 나서 수다 떨 곳이 필요할 때면 자연스럽게 이 카페의 이름이 입에 오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대형카페가 이제는 마치 내 앞마당이 된 기분이다.
이 카페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카페 밖에 있는 대나무 숲을 거니는 것.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여름 대나무 숲은 모기들의 뷔페다. 나는 아직 치명스러운 그들에게 헌혈 의사는 요만큼도 없다. 그래서 오늘도 창문 앞에서 바다와 대나무를 멀찍이 감상하며, 상콤한 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