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그렇게 무너진다

by 강라헬


문화센터 수강신청을 하고 첫 수업 날이었다.

보통은 재료비를 강사에게 미리 내면, 강사가 필요한 재료를 일괄 구매해 수강생들에게 나눠준다. 개인의 재료가 있든 없든, 중복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방식일 거라 생각하고 빈손으로 수업에 갔다.


그런데 강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료가 있다면 굳이 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돈 아깝게 왜 또 사느냐며, 있는 걸 사용하라고 했다.

순간, 굉장히 양심적인 분이라고 느꼈다.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강사로부터 “기본 재료비는 납부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전날과는 다른 말이었지만, 나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아무 말 없이 바로 입금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두 번째 수업 날이 되었다.

그날 오후, 강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은 이런 수업을 할 예정이니, 수업시간에 보자고.

나는 알겠다는 답을 보냈고, 지난주에 받지 못한 기본 재료도 챙겨 달라고 말했다.

강사 역시 알겠다고 했다.


수업 시작 30분 전,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조금 이른 것 같아 아래층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수업 시작 15분 전에 문화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말.

순간 벙쪘다.

이미 도착했기에 당황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문화센터도 정확한 상황은 모르고, 그저 “강사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는 정도만 전달받았단다.

사실 강사는 당초 “오늘은 2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말했었단다. 그런데 결국 수업을 아예 취소한다는 말로 뒤바뀐 것이다. 그리고는 하루 더 보강해주겠다는 말.


말이라는 게 참 가볍다.

이미 20분 지각할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왜 연락은 수업 직전에야 온 걸까.

왜 내가 미리 시간을 들여 도착하고, 기다린 후에야 “취소”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걸까.

나는 나의 시간, 나의 이동과 정성을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나.


물론,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꼬일지 알 수는 없다.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고, 성실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 다음 수업에 대한 책임감 있는 안내가 있었더라면.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왜 수업이 펑크 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강사로부터 직접적인 연락은 없다.

그 침묵이 가장 큰 실망이었다.


나는 사람 사이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뢰는 단단하고 오래 걸려 쌓이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나는 이 강좌를 정말 듣고 싶은 걸까.

이미 금이 간 신뢰 위에 다시 배움을 쌓을 수 있을까.

배움보다 더 근본적인 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는 걸,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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