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나라 사랑> ㅡ강정아
어릴 때의 거뭇한 기억은 없지만 그럼에도 또렷이 기억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좋은 일도 많지만 유독 공포스럽거나 무서운 일은 어릴 때의 기억으로도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삶은 미로 같기도 하거니와 그럼에도 그녀가 기억하는 일은 대부분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없이 살았다. 해군 장교인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큰집 사람들이 들이닥쳐 보상금을 챙겨 가버렸고 가족들은 쫓기듯 그곳을 떠나 지하 셋방에서 십 대를 보냈던 기억은 그녀에게 너무나 뚜렷하다. 언니의 나이 그때 일곱 살이었던 때다.
그녀의 기억은 여전히 지하 셋방에 남아 있다. 오빠는 큰집에서 데려갔고 언니는 일곱 살이었고, 지금도 일곱 살의 지능으로 살아가고 있는 언니의 이야기. <책방, 나라 사랑>은 그녀와 그녀 언니의 이야기가 과거라는 커다란 시간의 뭉치 속에 섞여 있는 이야기다.
무엇이 이토록 어린아이의 가슴에 남들과 조금은 동떨어진 삶을 살게 했을까. 감옥의 철창처럼 생긴 지하 셋방에서 중학시절을 보냈고 군대 간 오빠가 오면 잘 방이 없었다. 그래도 언니는 그녀에게 친구였고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 찬 말들을 해 주었다. 어차피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곳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언니는 그녀에게 소설도 들려주었고 남자 선배에 대해 이야기도 해 주었다. 스무 살의 언니는 예뻤다. 언니가 그토록 예쁜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시절, 언니는 데모하다가 다쳤다. 병원으로 달려간 엄마는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언니는 그 밤,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 한 세상이 끝나는 곳에서 다른 세상이 드러났다. 만연한 폭력과 모순과 은폐, 권력과 지배의 세계가 드러났다. 그 세계는 이미 존재했는데 내가 몰랐던 다를 세계였다. 언니가 나에게 알려준 어떤 비유로도 설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의 세계와는 맞설 수 없는 세계였다. 언니는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언니의 몸에 갇힌 이상한 언니의 영혼은 끈질기게 그 육체를 지켜냈다. ㅡ본문
군부독재타도ㆍ호헌철폐ㆍ진상규명. 갖가지 구호가 붙은 천막 안에서 삭발을 한 사람이 단식을 시작했고 ㆍㆍㆍ유월이 되었다. 대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숫자가 많아져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거기에 있는 듯했다. 그 유월에 언니는 눈을 꼭 감은 채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이제 눈을 뜨고 일어나는 일만 남았다.
언니가 알던 세상은 순수한 세상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대통령과 함께 사진도 찍었고 그 사진은 엄마의 앨범에 꽂혀 있었고 군인의 가슴은 지나치게 팽창되어 있었다. 언니는 <대학신문>에 [아버지의 사진]이라는 글을 썼고 어머니가 대통령과 찍은 아버지 사진을 내어놓을 때 그런 어머니가 부끄러워 방을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몰래 총살을 당하고 비밀리에 죽은 몸으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언니는 생각했던 것일까. 이 시대는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그녀의 언니는 적었다.
언니 편이 이겼지만, 언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는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바빴고 언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잡아야 한다고 매일 쫓아다녔지만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생계를 위해 여관으로 지하셋방으로 전전해야만 했다. 언니는 민주화 열사였으며 쓰러진 지 여덟 달 만에 서서히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ㅡ아주 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민주화가 되었다. 그토록 많은 희생으로 쟁취한 직접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울면서 항복을 선언했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보통사람이라며 믿어달라 했고,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ㅡ본문
ㅡ그러나 민중은 언니를 짓이겨놓고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으며 언니를 때린 자들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되는 나라를 언니가 사랑한 이 땅의 민중은 다시 만들어냈다. 언니는 누구를 위해 엄마를 버리고 동생을 버리고 거리로 나갔을까. 언니가 목숨 걸고 지켜주어야 할 가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다. ㅡ본문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다쳤고 죽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어느 누구 하나 다친 이를 위해 죽은 이를 위해 싸운 이들을 위해 미안하다는 고맙다는 애썼다는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로 한 그때, 언니가 돌아왔다. 언니가 엄마와 그녀에게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언니는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언니의 변화를 꼼꼼히 기록하며 살아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줌도 잘 가리지 못했고 소처럼 처연하고 맑은 눈으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는 언니였지만 오로지 살아 있는 언니와 다시 한집에서 먹고 자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녀는 그때 대학을 가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때쯤 그녀는 자기가 알고 있던 역사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알고 있던 한 줌의 역사는 거의가 거짓이거나 중요한 사실을 누락한 것이었음을. 교과서에서 생략한 역사는 피투성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가 당한 것보다 더 끔찍한 것도 있었고 죽도록 고문을 당하고 시체바 되어 버려진 사례는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들에게도 꿈꾸는 삶이 있었을 텐데, 그들이 만들어야 할 이상적인 사회가 있었을 텐데 투신을 하고 분신을 했던 사람들의 죽음은 절망이었을까 희망이었을까.
언니는 어땠을까. 언니는 시위에 나갔던 것을 후회할까. 언니의 대의와 명분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살아남을 만한 것이었을까. 다른 무엇보다 이 땅의 자유, 이 나라의 민주화가 언니에게 가장 큰 가치였을까. 그녀는 궁금했지만 언니는 대답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돌아왔다. 스물한 살의 어느 날, 죽었다 깨어난 언니는 처음구터 다시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돈다. 그날 언니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언니가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정신은 망가진 채 우리는 다 같이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열아홉의 그녀는 언니가 다녔던 대학을 들어갔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엄마와 언니를 먹여 살려야 했지만 엄마는 그녀에게 무어든 해도 좋은데 데모만은 하지 마라 했다. 나빠서가 아니라, 그녀마저 다치면 엄마는 죽는다고.
세상은 변했을까. 아마도 무언가 달라지긴 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어쩌면 기적 같다고 해도 좋을 한 걸음을 떼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지구의 한 끄트머리에 간신히 붙어살고 있다고 느끼는 스무 살짜리 그녀는 비관주의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찾아 직장도 다녔고 그 무렵 언니와 엄마는 시골로 내려갔다. 언니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장애 1급이었지만 엄마는 죽지만 않으면 됐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녀는 돈을 벌게 되면서 엄마와 언니에게 소연해지게 되었다. 자주 찾아가지도 않아 돈으로 때우기도 했다. 그러면 조금 위안이 되었다.
직장에다 사표를 내고 이직을 하려 했을 때 잠시의 공백 기간에 중국 여행을 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그녀는 익숙한 것들에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언니에게 돌아가리라 마음먹는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바닷가 소도시에 어울리는 작은 서점을 열었다. 언니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예쁘게 엄마를 닮아갔지만 스무 살의 얼굴은 찾지 못했다.
언제부터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시점부터 어른이라 친다면 그녀는 아직도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 날이 생애에 있을 수 있을까 물음을 던진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 컴컴한 지하 셋방 구석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벌어 좋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그때가 제일 어른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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