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으로 드러나는 검은 사슴들

<검은 사슴> ㅡ한 강

by 어린왕자


꿈을 꾸었단다. 검은 프라이팬 위에 웅크린 몸뚱이라니, 끈끈한 노른자위 속에 막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살덩어리라니. 새벽꿈의 잔상이라기엔 너무 처절하다. 그렇게 한 강 작가는 의선의 아픔을, 민영의 아픈 이야기를 약간은 불쾌하거나 약간은 끔찍하다 할 만큼의 무게로 만들어내고 있다.

<검은 사슴>은 한 강 작가의 첫 장편이다. 나는 한 강의 작품을 처음 접하지 않았기에 익히 알고 있는 다른 소설처럼 가슴을 짓누르며 꺼이꺼이 아픔을 삼키며 읽지 않아도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미 그녀의 깊은 심란에 만성이 되었기에 덜 습하다고 해야 할까. 만약 이 작품을 처음 읽었다면 어둡고 습하고 온갖 퀴퀴한 냄새나는, 끝도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아픔을 이다지도 꺼름찍하게 써야 하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 텐데 역시 한 강 아니면 이런 작품은 나올 수 없다 탄식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하다.

그들은 어떻게 의선을 알았을까. 옆의 사무실에 근무하던 의선을 처음 본 후로 갈 곳 없는 그녀를 데려다 옥탑방에서 잠시 함께 지낸 것이 인영에겐 전부다. 집을 나간 후 도심 한복판에서 나신으로 미친 듯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렸고 그런 의선을 명윤과 인영은 그녀의 어렴풋한 말 한마디를 기억에 담은 채 찾아 나선다.

기억은 없다. 그곳에 가 본 기억도 없지만 단지 의선이 불분명하게 되뇌었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갈 뿐이다. 의선이라는 이름만 안다. 주민번호도 주소도 없다. 그 이름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의선을 만나기 전까지 인영은 꿋꿋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되었다. 의선을 알기 전까지는. 딱 한 번 어렵게 제주도로 간 여행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던 언니 민영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았었는데 의선을 만난 후 인영은 다시 묵힌 아픔을 건져 올려야 했다. 민영의 시신을 찾으러 제주도로 간 엄마마저 얼마 후 세상을 떠나면서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었던 인영이다. 아픔이 다시 건져 올려졌다.

의선은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약초 캐는 가난한 아버지와 매일매일 미쳐가는 엄마, 크지도 더 자라지도 않는 오빠와 함께 살면서 집을 나간 엄마를 찾으러 나간 아버지마저 돌아오지 않자 의선은 산골짜기를 벗어난다. 그러다 명윤을 만난다. 명윤은 어릴 적 집 나간 누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꿈처럼 아득한 이야기다. 인영은 자신의 기억대로 추억을 좇아 의선을 찾아 나서고 명윤은 자신의 기억대로 의선을 찾고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선을 기억하며 불안을 안고 상처를 안은 채 그들이 서 있던 도심 한복판에서 의선이 살았을지도 모르는 탄광촌으로 향한다.

검은 사슴은 깊은 땅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하늘을 보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의선은 지긋지긋한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웃집 언니에게 글을 배웠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태어나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던 산골짜기에서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질 때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 지독한 밑바닥의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다. 의선은 도리어 자신이 누구인지 잃고 말았다. 미쳐버린 것이라고 했다.

한창 잘 나갔던 탄광촌의 모습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폐광의 갱도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차 오르는 인간의 아픔과 고립을 함께 내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의선은 아니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갱도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말해주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표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강 작가는 아픈 마음을 꾸욱 눌러가며 켜켜이 슬픔을 쌓아올리다가도 마지막에서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제발 살아 있어라, 아픈 기억을 담고 찾아간 그곳에서 제발 의선이 살아 있기를, 도심 한가운데서 그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돌아다니던 벌거벗은 의선의 가녀린 몸뚱이처럼 살아 있기를,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던 그 모습대로 한 줄기 희망을 쏟아내고 있다.

#한강#검은사슴#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