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개져버린>ㅡ아하 지음
핏줄이 터져 <빨개져버린> 눈에 단지 안대를 했을 뿐인데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 시력에 문제없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그나마 다행이라 했다.
왜 그랬어?
어쩌다가?
많이 아프겠다.
안대 한 모습이 이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었다. 원래 빨간 신발이었던 것이 희미하게 빨갛게 보이고 차량 전조등도 실핏줄 터진 눈처럼 유독 빨갛게 보인다. 원래 빨간 것이었다. 단지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더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생활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빨간 부분이 더 커지는 것이 걱정이라며 의사 선생님이 편하게 안대를 착용하라고 하셨다. 의사 말을 들었다. 굳이 안 들을 이유는 없는지라. 낯설다. 낯설지만 나쁘지 않다.
눈이 아파 안대를 했을 뿐인데 의외로 관심이 너무 많다. 그것이 싫지 않다. 아빠는 그저 스쳐 지나갈 뿐 아프냐? 어쩌냐? 등등의 말은 없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은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 준다.
야, 한 번 벗어 봐
언제 벗는데?
그녀는 그 관심이 좋았다. 안대를 벗고 싶지 않았다. 안대를 하지 않았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는데 단지 안대를 했을 뿐인데 의외로 많은 관심에 기분이 좋다. 나에게 다가오는 이런 관심, 좋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평소엔 관심 없다가 뭔가 특별한 게 있으면 관심 가지는 거. 이런 관심이 오래가지 않거나 그것도 관종이라며 난리 피운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안대에 꽤 오랜 시간 동안 관심을 보인다. 계속 그런 관심을 받고 싶다.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있고
걱정해 주는 아이도 있고
징그러워하는 아이들도 있고
얘는 뭐야? 장애인 아냐? 하는 아이도 있다.
수많은 관심 속에 그녀는 내심 관심받는 것이 좋았다.
선생님도 그렇고 버스 기사 아저씨도 눈이 왜 그러냐 물어 주었고 분식집 아주머니도 그녀를 걱정해 주었다. 사실 그녀는 안대를 쓰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좀 멋있다고도 느꼈다.
눈이 다 나아 안대를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안대를 쓰기로 했다. 때가 묻어 더러워졌지만 그래도 그녀는 학교 갈 때 안대를 벗지 않았다.
야, 한 번만 보여 줘.
아직도 안 나았어.
언제쯤 낫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질까 봐 그녀는 학교를 갈 땐 안대를 썼다가 집에 오면 안대를 벗는다. 어차피 집에서는 안대를 쓰고 있으나 쓰고 있지 않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이 없으니 아무래도 괜찮다. 정작 많은 관심을 가져 주고 반응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사는 가족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언니라는 작자는 오히려 놀려대기도 한다. 말을 하기 싫어진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안대가 더럽다고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친구와 싸우다가 안대가 벗겨졌다. 일방적으로 맞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뭐냐며 놀려대자 서럽게 울었다. 창피했다. 맞은 게 아팠던 것인지, 안대 밑에 아무것도 없었던 게 들통나서 창피한 것인지 상처가 아문 그날 친구와 싸우고 나서 한참을 울고 말았다. 울고 나면 상처가 가실까. 나는 그랬다. 순간적으로 울고 나면 화가 덜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 다시 건드리면 터질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털어놓은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나에게만 관심이 없다면 그건 분명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무관심이 아플 때가 있다. 무관심이 오래다 보면 무관심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된다. 그때는 마음이 더 쓰리고 아프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눈에 실핏줄이 터져 안대를 한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 잘 된 일이다. 색다른 관심이었다. 그녀는 관심을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런 관심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다.
혼자 있는 외떨어진 삶은 싫다. 관심을 받고 싶은 모든 이의 마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빨개져버린> 눈으로 인해 그녀에게 쏠리는 관심이 심장이 펌프질 하도록 온통 빨강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