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의 화해를 가로막는 자본의 폭력성에 관한 일침

소금ㆍ박범신 저

by 어린왕자


소금 작업을 할 땐 '온다'고 표현한다. 소금은 염부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이 바닷물을 익혀주기 기다리면 시간의 레일을 타고 마침내 눈부시고 가뿐한 결정체로 찾아주는 귀빈이 바로 소금이기 때문이다.

소금밭에서 염부 한 명이 소금더미에 코를 박고 죽어 있는 것을 또 다른 염부가 반듯이 뉘어놓았다. 한계치에 달하는 노동력과 피어린 단심을 다 바쳐 맞아들인 귀하고 귀한 손님을 맞으려면 염부들은 쉴 틈이 없다. 그래서일까, 죽은 염부는 마지막 가는 길 입안 가득 소금을 물고 있었다. 남달리 혹독한 삶을 살아온 그를 소금이 죽인 것이라고, 햇빛이 그를 죽인 것이라고 했다. ㅡㅡ프롤로그

<소금>은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화해가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한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가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적인 화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늙어가는 아버지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붙박이 유랑인이었던 자신의 지난 삶에 자조의 심정을 가질는지도 모른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이 되는 대목이 많아 딜레마에 빠졌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묻고 싶다고. 이 거대한 소비 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지 아는가를. 그들은 지난 반세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 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 있는가를. ㅡㅡ작가의 말


<소금>은 소금장이 염부로 평생을 산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는 염부가 되지 마라며 도시로 내쫓았지만 결국 자본주의의 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간 사회 안에서도 오롯이 '첫 마음'을 지켜내고자 결국 아버지의 소금 곁으로 돌아오고 만 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모든 희망이었다.

'나'는 폐교 운동장 한쪽에 서 있는 배롱나무 아래에서 시우를 만났다. 시우는 아버지를 찾고 있다. 여태껏 십 년 동안 아무 일이 없으니 죽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래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시우의 생일날 배롱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었고 그 배롱나무가 잃어버린 아버지의 그림자였을까. 그 이후로 아버지는 그냥, 그냥 돌아오지 않았던 아버지를 시우는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림자 같은 존재, 유령 같은 존재, 때론 있으나마나 한, 그러나 늘 우뚝 한 곳에 그대로 서 있는 존재.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아버지가 늘 옆에 있을 때는 모른다. 특히 돈을 벌어다 주고 아버지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경제적인 여유까지 누리고 있으면 당연하다고 여길 줄만 알지 아버지의 노고는 모르고 지낸다. 시우의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는 빨대로 찌르면 빨리고 마는 존재였다. 꽂으면 쪽쪽 빨리고 빨리고도 또 빨아내면 다시 나오는, 시우의 아버지는 그런 조직 속에서도 가족에게서도 빨대에 꽂힌 채 살았다. 아니 꽂으면 꽂는 대로 빨려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지긋지긋했다.


그는 열심히 돈을 벌었고 가족들은 호화롭게 살았다. 시우의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사실 나가려고 나간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아내와 세 딸 중 제일 사랑한 아이는 막내 시우였다. 시우의 생일날 시우에게 줄 디지털카메라를 주문해 놓고 대금을 지불하고는 찾아오질 않아 집에 들어가기 전 그걸 가지러 갔던 아버지는 우연히 미끄러지던 트럭에 실린 소금을 발견하고는 마법에 걸린 듯 그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소금 트럭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가출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럴는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빨때로 꽂힌 세상에서 소금이 그에겐 아마 그의 존재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가 그토록 완강히 거부했던 염부.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꾸리던 염전이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넘어가자 그의 아버지는 남의 염전을 빌려 생계를 유지했다. 힘든 일임을 알기에 그의 아버지는 똑똑한 셋째 아들인 그에게만큼은 염부가 되지 마라 했다. 그런데 그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소금 트럭에 몸을 싣고 그만의 자유로운 삶을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선명우 대신 김승민으로 살았다. 행복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셋째 딸 시우만큼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조합인데 트럭에 타고 있던 그들은 가족으로 살았다. 이름을 부르며 가족이 되었다. 김승민은 트럭을 타고 전국 축제를 다니면서 자신의 지난 가족을 떠올리며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날을 회고한다. 재산을 늘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잉여 재산이 가져온 건 황폐함 뿐이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트럭에서 만난 여자는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 게 자신 때문이었다며 저년 때문이야 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집을 나와 화장실에서 강보에 버려진 아이를 만나 같이 살았다는 선미.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이틀 밤을 고모집으로 걸어가다 죽을 뻔한 고비에서 자신을 살려 준 첫 마음을 준 '세희 누나'를 떠올린다.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 세계. 그의 아버지가 그토록 되지 마라던 염부의 일.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가야 한다는 날, 대학생 아들 하나 보고 살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평생 한 번도 소금밭을 떠나본 적 없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소금 결정지 한가운데 둥글게 모아진 소금 더께의 한쪽 모서리에 이마를 뉜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조금 전에 쓰러진 게 아니었다. 몸속 염분이 부족해 실신해 쓰러져 죽었다. 마지막 가는 날, 입안 가득 소금을 물고 죽었다.


ㅡㅡ우리가 사 먹는 정제염으로 만든 꽃소금엔 미네랄이 거의 없고 우리나라 천일염이 세계적인 브랜드인 프랑스 게랑드 소금이나 나폴리의 샤이염전 소금에 비해 미네랄 함량이 월등히 높다. ㅡp128

소금을 만드는 과정은 염부의 육체 속에도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소금은 염부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라고 했다. 평생 오로지 염전만을 일구고 산 사람의 어떤 기운이 그로부터 너른 증갈지 너머의 그에게로 와닿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시우는 알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를 생각했고 그날처럼 아버지를 떠올렸고 그 노랫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임을 느꼈다. 아버지는 귀가하고 있다ㆍㆍㆍ고 느꼈다.


시우ㅡ시를 좋아하는 아이라 지어진 이름. 배롱나무 아래서 시우는 아버지와 함께 찍었던 생일날의 사진을 보며 아버지를 찾아 나섰고 시우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생명을 살리는 소금 같은'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소금#박범신소금#박범신#자본의폭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