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꿈꾼 '보편 제국'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ㅡ시오노 나나미

by 어린왕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의 흥망을 이야기할 때 로마제국이 왜 멸망했는가를 배우기보다 왜 로마제국이 그만큼 오래 지속되었는가를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일축했다. 그만큼 고대 로마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관심 가는 역사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후 서기 476년,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인 5세기에 로마제국은 멸망한다. 약 1000년 동안의 로마 통사를 시오노 나나미는 통쾌하고 강렬하게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으로 엮어냈다.

왜 로마인가? 로마만큼 재미있고 멋진 사람들은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꽤 로마에 흥미를 가졌던 것 같다. 대표적인 르네상스인 가운데 한 명인 마키아벨리는 "기독교는 1000년 동안 유럽인의 정신을 지배해 왔다. 그런데도 우리 유럽인의 인간성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존재 자체가 원래 종교에 의해서조차 바뀌지 않을 만큼 '악'에 대한 저항럭이 약해서가 아닐까? 묻고 있다. 또한 프로테스탄트인 루터는 "인간성이 개선되지 못한 것은 기독교의 종교 형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뜻을 향상해야 한다고 하는데 성직자들이 오히려 신과 신자의 연결을 방해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선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악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ㆍㆍㆍ?라고 로마인은 리얼리즘에 철저하게 인간상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로마가 꿈꾼 것은 '보편 제국'이었다. 이 보편 제국의 꿈을 사상 최초로 품었던 사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는 그리스 문명과 페르시아의 문명 간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장대한 꿈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이후 300년 후에 로마의 보편 제국을 꿈꾸며 나타난 이가 율리우스 카이르다. 카이사르가 설계도를 만들고 그 후의 황제들이 만들어 낸 로마제국이 바로 알렉산드로스가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었고 로마의 패권이 미치는 모든 곳은 로마라고 했다. 로마에서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인종이나 민족, 종교가 다르다고 해도 로마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는다는 의미다. 즉 로마법에 따라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 있으며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관용의 정책을 펼친 것이다.

카이사르의 '관용'은 그로부터 2000년 이상 진보한 국가들조차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국과 미국의 시민권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영제국 영국은 모든 일반 백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즉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했을 뿐, 인도인은 결코 영국 시민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은 문명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그들 스스로 '최고의 가치'로 믿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하지 않는 국가는 모두 적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로마인도 물론 실패가 없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의 연속에도 로마는 그들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고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했다는 점이 사뭇 다르다. 로마가 1000년 이상 지속된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님을 안다. 다만 있는 그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분명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언덕에서 출발했던 도시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뻗어나가고 포에니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당시의 거대제국 카르타고를 끌어내리고, 마침내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고 명명했던 나라. 또한 북유럽까지 세력을 확대해 거대 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390년에는 켈트 족의 침입을 받고 어이없이 점령을 당한다. 그렇지만 로마는 수렁에서 일어서 진정한 로마를 이루어 나갔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패배가 내부에 있음을 직시하고 단순히 반성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론 분열이라는 손실을 막기 위해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공화정으로서의 정치 형태를 제정으로 이행했다.

그리스인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켈트 족에게 침략을 받은 것이야말로 로마를 강대하게 만드는 첫걸음이었다고 기록했다고 전한다. 켈트 족에게 습격당한 로마가 신생국 로마를 이뤄내는 데는 채 20년의 세월도 걸리지 않았다. 그 세월 동안 로마는 결코 개혁의 의지를 놓지 않았으며 그 결과 비로소 진정한 로마를 이루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로마에게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반도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시칠리아 섬을 카르타고가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불붙은 전쟁이 포에니전쟁이다. 세 번의 전쟁에서 이긴 로마는 승리했지만 혼미의 시대를 맞는다.

독일의 역사가 몸젠은 "로마가 낳은 최고의 창조적 천재"로 카이사를 뽑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포에니전쟁에서 한니발을 짓밟은 스키피오아프리카누스도 있고 혼미의 시대에 등장한 코르넬리우스 술라도 있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로마의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도 있고 그들의 지략과 로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결코 로마사는 흥미롭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역사란 인간이 만드는 것, 그래서 역사는 재미있다고 작가는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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