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를 외우던 때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을 읽으면서 부모가 떠올랐다.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들을 향한 공부법이나 사랑법은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어느 부분은 독특한 부분이 있구나를 느끼게 했다. 좀 유별났던 내 아버지의 공부법이 살짝 오버랩되어 입술을 앙다물게 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었던 그때의 나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보게 된다.
작가는 어렸을 때 글씨를 너무 못 써서 아버지로부터 우물 정자 천 개씩 쓰는 과제를 받았다 한다. 그리 쓰도 글씨는 나아지질 않았고 팔만 아팠다 고백한다. 그러다 컴퓨터가 나와 타이핑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원고지에 글을 쓰거나 붓글씨를 쓰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출세하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작가의 아버지는 작가가 첫 책을 냈을 때 책의 내용보다 오자를 찾아 지적한 것에 약간의 서운함을 드러냈다고, 그래서 그 감정이 결국 화해하지 못한 채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끝이 났다고 말한다.
내 아버지의 공부 방식은 이랬다.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한자를 배웠고 영어를 배웠다. 지금도 한자의 첫 페이와 영어의 첫 페이지는 잊히지 않는다.
아이 엠 탐, 아이 엠 어 스튜던트, 유어 아 제인, 유어 아 스튜던트.
날 日, 달 月, 뫼 山, 내 川, 불 火, 물 水, 나무 木, 쇠 金, 흙 土.
거기다 육십갑자까지.
처음 배운 한자와 영어를 매일매일 써 내려갔다. 그 당시 A4용지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달을 넘긴 달력을 A4용지처럼 만든 것에 그날 배운 영어와 한자를 앞뒤로 꽉 채워야 했다. 예를 들면 오늘 1 과를 배웠으면 배운 1 과를 다 채워야 했고 2 과를 배웠으면 처음부터 배운 2과까지 종이를 채워야 했다. 중학교의 어린 놀기 좋아하던 아이들에겐 그야말로 고역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영어는 제외되었으나 한자는 꾸준히 읽고 써야 했고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한자는 잘했지만 영어는 점수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썼던 영어는 내 것이 되지 못했고 한자는 내가 제일 잘하는 과목이 되었고 그 자존심으로 한자교육을 전공하는 이름 있는 대학에도 가려했었다.
나는 지금도 육십갑자를 외운다. 중학교 때는 멋모르고 외우고 적었던 육십갑자 덕분에 그 당시 한자 선생님도 깜짝 놀라시곤 했다. 학교에선 육십갑자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뿐더러 능숙하게 써내던 아이는 아마 아무도 없었을 시기였기에 그랬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육십갑자의 의미도 알고 원리도 알지만 그때는 그냥 글자대로 쓰고 외워댔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육십갑자를 외우는데 머리가 기억하고 있어 술술 읊어댈 수는 있지만 한자로는 잘 쓰지 못한다. 손으로는 지금까지 적어오지 않았던 때문이다.
혹독하게 공부를 시켰던 아버지가 그때는 밉고 원망도 들었지만 아버지의 나이가 되도록 살아 보니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경험해 보았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2등의 삶도 살아보고 있는 지금에서야 오래 살아남는 법도 익히고 있는 것 같다.
장자는 쓸모 있는 나무는 일찍 벌목되므로 쓸모가 오히려 제 몸에 해를 입힌다고 했다. 오히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이 오래 남는다고, 그 삶이 최고라고,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시대가 왔다고 김영하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아무도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라고.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고.
아버지의 유별났던 공부법으로 인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많은 경험을 쌓고 어느 한 분야에선 특별하단 소리를 들으면서 2등의 인생으로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양귀자 씨는 그랬다고 작가는 전한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라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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