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

독서모임 <책도둑> 1주년에 즈음하여

by 어린왕자


생판 얼굴도 모르던 낯선 사람 5명이 모였다. 여고 동창이라는 제법 낯설지 않은 인정으로 시작해 서로 인사를 주고받던 그녀가 예쁜 꽃이 좋아 정원 모임을 하고 있는 그녀의 아는 사람을 불러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연이 되어 <책도둑>을 만들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이야기로 흥분해서 우리는 한동안 전화를 주고받았다. 3년을 같이 학교 울타리 속에서 지나치면서도 얼굴도 모르던 여고동창인 그녀가 책으로 배경사진을 올리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한강의 책이 있느냐 물었다. 빌려줄 수 있다 하고는 그렇게 만남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강 작가의 대부분의 책들은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타기 십 년 전부터 빌려 읽었는데 어쩐 일인지 <흰>은 내 돈 주고 산 책이었다. 그 책을 빌려 주면서 독서 모임을 하자 했고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 다른 그녀와 우리 셋은 처음 만났다. 2024년 늦가을이었다.


세 명이 독서모임을 하면서 이미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부끄러움도 없었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는 학교 교사로 몇 해 전 퇴임을 했고 남편이 운영하는 카페에 딸린 정원을 가꾸고 있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집 옆에서 남편은 카페를 하고 있는데 그 카페가 우리의 독서모임 아지트가 되었다. 이리저리 장소 물색하지 않아도 되고 2층에 오래 앉아 있어도 손님들에게 불편도 주지 않아서 안성맞춤이었다. 집에서 조금 멀지만 그래도 믿고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았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도 무뎌지고 자기 것을 조금 베풀면서 사는 여유로움이 그녀들에서 보였다. 선뜻 장소를 제공해 주겠다는 그녀는 따뜻한 봄이 왔을 때 그녀의 아지트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그녀의 뜰에서 매화 구경도 했다. 넓게 펼쳐진 보라빛봄 정원은 그야말로 봄이었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열매가 봄햇살에 익어가면서 우리의 모임도 따스했다.


카페에 자주 오시는 분 중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손에 끼고 명상에 잠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카페 주인장의 권유로 책도둑에 들어오게 된 언니, 그리고 함께 영어를 배우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선뜻 이 모임에 발을 디딘 예쁘고 젊은 동생까지 1주년을 향해 달려왔다.


1년이 지나니 마음에도 있는 소리를 뱉어낼 줄 알고 그 또한 우스갯소리로 받아넘길 줄 알고 그러다 지난해 12월의 겨울밤을 하루 함께 보냈다. 케이크를 준비하고 1주년 생일 미역국을 끓이고 수다를 떨면서 오래 지낸 연인들보다 더 뜨겁고 즐거운 밤을 보냈다.


그녀는 말했다.

아직 우리가 1년밖에 안 됐는데 같이 밤을 보낸다니 처음엔 망설였는데 지나고 나니 너무 좋았다고. 언니들이 너무 잘해주고 따뜻해서 너무 즐겁고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고.


얼굴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 5명이 모여 하루 온종일을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힌 날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흉보지 않았고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올해에도 여전히 2주년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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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두번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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