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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May 02. 2024

고향 땅에서 밟은 오래된 것들

차마 잊을 수 없는 것들 2

 등에 업힌 어린아이는 늘 울었다. 방안에 들어가도 부엌에 서 있어도 일 간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대문 밖 등에 업힌 어린 아가는 연신 울어댔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업고 돌봤다. 다 찌그러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에 겨우 지탱하며 서 있는 방 하나에 아궁이 하나, 살강 위에 얹힌 밥그릇 국그릇 몆 개가 전부였던 집. 그 집에서 나는 어린 동생을 업고 어르며 일 나간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니, 엄마의 손에 얹힌 빵 하나가 그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아픈 기억이다. 오래된 지금은 추억이라 불리는 일이지만.


  가난했던 부모 세대는 가난도 모르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모두가 아이를 많이 낳았고 자연스레 많이 죽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이 어떨까 가히 찢어진 상처였을 것으로 공감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걸 알 리 없었다. 어린 아가를 등에 업은 어린아이는 제대로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서울에서 내려와 정착한 곳이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이다. 우리 다섯 식구는 문간방에 살았다. 서울에서 내려와 돈이 없어 오갈 데 없는 우리를 아버지의 지인이 가엾게 여겨 방 하나 부엌 하나 딸린 그곳에 살게 해 주었다. 연탄아궁이를 썼다. 아버지가 일을 하시고 돈이 생기면 젤 먼저 쌀을 샀고 그리고 연탄을 샀다. 젤 보배로운 일용할 양식이었다.  


 우리는 방 하나 린 다세대 문간방을 벗어나 방 하나 딸린 독채로 옮겼다. 그 집을 돈으로 샀는지 어쨌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셋방보다 나으리라 여긴 가난한 부모가 부지런하게 애써 모은 돈으로 아마 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찌그러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가도 내 집이라 좋다던 엄마 말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걸 보면 당신들에겐 열 부자 안 부러웠던 집이었으리라.


 그 집에서 막냇동생이 태어났다. 2년 터울이었던 오빠가 있었고 2년 아래 남동생이 있었고 그 아래 2년 터울로 막냇동생이 태어났다. 지지리도 가난했다. 일 나간 부모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다. 체구가 가장 작았던 어린 여덟 살의 나는 그 동생을 책임? 져야 했다. 오빠와 남동생은 무얼 했는지 모르지만 여덟 살의 어린아이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단지 부모를 기다리는 것만 할 수 있을 뿐. 먹을 게 없으니 동생이 많이 아팠다. 무슨 이유인지 어린아이는 몰랐지만 막냇동생이 죽었다. 부모는 가슴에 그 아이를 묻고 무덤을 만들었다.

 부모가 남겨 놓은 땅에  텃밭을 꾸몄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그 터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 친구가 텃밭을 꾸민다니 너무 고마웠다. 시간이 지나 잘 찾지 않은 그곳을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 할 즈음 내민 제안이다. 엄마의 숨결이 스민 고향이란 단어가 무색해지지 않게 하고 싶었고 잊히기도 싫었던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고향 땅을 밟을 이유가 생긴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도 일을 나갔다. 어린 세 자식들이 당신들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세 남매는 동생이 죽어도 슬픔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다만 밤마다 찬물 한그릇 떠놓고 둘러 앉아 흐느껴 울었던 기억은 있다.


얼마를 살고 좀 더 너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방이 두 개였으며 화장실이 따로 있는 독채였다. 사춘기였 아이들이었지만 따로 쓸 방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엌을 줄여 내 방을 만들어 주셨다. 비키니 옷장  하나가 들어가고 책상 하나가 들어갔다. 책상 밑으로 다리를 뻗어 누우면 꽉 찬 방이었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었다. 내가 연탄가스를 마셔 헤롱헤롱 정신을 잃었을 때 동치미 국물을 떠 먹이시던 엄마가 '아 죽이겠다'며 곤로를 사자고 아버지를 긁었다.


 우리 집에도 신문물 곤로가 생겼다.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붙여 손잡이를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 벌겋게 타올랐다. 곤로도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나서 머리는 더 아팠다. 그러나 기름 냄새 맡고 정신을 잃지는 않으니 자식들 죽일 만큼의 일은 없었다. 우리도 제법 살 만한 때가 있었다. 그 많던 풍로는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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