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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May 03. 2024

뻥튀기 아저씨는 건강하실까

차마 잊을 수 없는 것들 3

[따뜻한 아랫목 같은 기억들]을 읽고


 여름부터 봄까지 새콤달콤 향기 가득히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초록담쟁이님의 그림이 따뜻해서 참  좋았습니다. 내 어릴 적 유년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포근했습니다. 일 년 내내, 봄 여름 가을 겨울, 수도 없이 변한 세월이건만 따뜻한 아랫목 같은 소중한 기억들이 그림 속에서 켜켜이 묻어납니다. 저도 유년의 그날들이 너무 좋습니다. 다시 떠올려도 너무 따뜻합니다. 추억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초록담쟁이님이 그린 그림에 제 글을 덮어써 봅니다.

초록담쟁이

 한여름 엄마랑 봉숭아물들이던 날, 절구공에 봉숭아 꽃잎 빻아 손가락에 얹어 비닐로 칭칭 묶어주시던 일이 그렇게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그림 속 엄마는 너무 예쁩니다. 우리 엄마도 예쁘셨지요. 힘든 날 살아내느라 고달팠지만 일 년에 한 번 따뜻한 봄날 연례행사 치르듯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었지요. 햇살 가득 내리쬐는 날 우물가에 앉아서.


 연례행사면 어때요.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내 손도 엄마 마음도 곱디고왔습니다.

초록담쟁이

 연잎을 따다 비를 피했지요. 갑자기 만난 소나기를 어떤 날은 피하기는커녕 그대로 맞았던 날도 있지요. 홀딱 맞아도 기분 좋았습니다. 엄마가 혼을 내도 기분은 좋았지요. 사진 속 그녀들처럼 깔깔거리며 즐거웠어요. 지금의 그 친구들이 하나는 ㅇㅇ에 하나는 ㅇㅇ에 살고 있지요. 일 년에 두세 번 함께 만나는 그리운 얼굴이지만 늘 마음만은 깔깔거리며 웃고 지내지요. 비에 젖는 건 힘든 일이 아니니까요. 그땐 뭘 해도 즐거웠어요.

초록담쟁이

 꽃보다 더 예쁜 이름

엄ㆍㆍㆍ마ㆍㆍㆍ

 엄마는 꽃보다 예쁘고 하늘보다 맑고 바다보다 더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하죠. 우리 엄마도 그랬죠. 장미꽃 한 송이 사다 드린 적 없지만 장미 향기가 났고 예쁜 카네이션 가슴에 달아드린 적 손에 꼽지만 늘 보고픈 사람이었죠.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건 언제나 애달픈 일이었어요. 지난했던 삶의 더깨가 얹어진 어깨는 늘 무거웠을 거예요. 그래도 엄마는 꽃보다 예뻐요. 지금도 그러해요.

초록담쟁이

 목욕을 가면 엄마는 하얀 내 등을 피가 나도록 빡빡 밀었지요. 묵은 때도 없는데 추석이나 설이 되면 찾는 비싼 목욕탕이라 본전을 뽑을 정도로 밀어댔지요.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익은 살갗을 애써 숨기고 나오면 엄마는 요구르트 하나를 사 주셨지요. 갈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모자랐지만 그때 그 요구르트는 꿀보다 더 달콤했어요. 지금은 목욕탕 거리에 낯선 이방인이 가득하고 이방인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곳이지만 요구르트가 생각나고 바나나 우유가 떠오르는 목욕탕 앉았던 그 자리가 눈에 선해요.

초록담쟁이

  오일마다 장이 열리면 제일 인기 있었던 뻥튀기 집. 뻥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귀를 막아도 화통 삶아 먹는 소리 같다고 했어요. 소쿠리에 담기다 튕긴 튀밥을

손으로 주어 입에 대면 얼마나 따끈따끈 했던지요. 쌀을 튀기고 보리쌀을 튀기고 가래떡을 튀겨내 가장 짜릿한 공연도 보았지요. 고소한 튀밥을 함께 먹었던 그 시절의 뻥튀기 아저씨는 어디서 무얼  하실까요.

초록담쟁이

 처마 밑에 홍시가 주렁주렁 우리 집에도 널렸었지요. 겨우내 먹을 양식, 허기진 날에는 하나씩 하나씩 엄마 몰래 빼먹었지요. 엄마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아셨어요. 아시고도 단지 말을 안 했을 뿐이지요. 단지 안에 든 떫은 감도 소금물이 배지 않아도 곶감 빼먹듯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없었지요. 달콤한 곶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떫은 감도 왜 그리 달콤하던지요. 그러나 범인은 누구인지 아직도 몰라요.

초록담쟁이

 흙탕길을 탈탈탈탈 달려오는 경운기는 우리들의 자가용이었지요. 경운기 아저씨는 우리를 태우려 일부러 서질 않아요. 우리는 경운기보다 날랬고 빨랐어요. 일단 가방부터 먼저 던지고 도움닫기로 해서 뛰어올라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한 번에 착 깔끔한 착지를 하죠. 내릴 때도 마찬가지죠. 마을 입구가 보이면 누구 가방이랄 것도 없이 먼저 길가로 던져요. 그리곤 엉덩이를 떼면서 네모난 철단을  손바닥으로 짚어 착 뛰어내리지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에 아저씨가 뒤돌아봐요. 혹 다치지 않고 잘 내렸는지 뒤를 돌아보시던 아저씨.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나요. 눈에 선합니다.

초록담쟁이

 초록 점빵의 그리움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고 산수유가 노랗게 피는 볕 좋은 봄날 작은 점빵 앞에 달콤한 하드 하나 입에 물고 앉아요. 20원짜리 자야를 사서 야무지게 부셔먹고 별사탕은 밤에 먹으려 남겨 놓아요. 마냥 따뜻하고 좋았던 유년 시절. 우리들의 어린 시절 봄이 그렇게 달콤하게 익어갔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마주한 봄. 이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가을을 건너고 겨울을 또 살아내겠지요. 저마다의 따뜻한 기억으로 포근한 기억으로 아픔을 이겨내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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