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내 아이는 부담스럽고, 남의 아이는 이쁘고 귀여운 이상한 상황을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바깥에서 내 일을 찾았기 때문에, 나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행복하다고 착각했었어요. 그런데 6시간 연속으로 강의하고 완전히 지쳐서 돌아가는 날에도, 남의 아이들과 있을 때는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힘들어졌죠. 단순하게 6시간 동안 연강을 해서 지쳤나 보다, 생각했지만 점점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피곤해서, 힘들어서라고 말하기엔 문제가 다른 것 같았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내면 아이 공부, 자존감 공부 등등을 하며 나름 제대로 갈길을 가고 있다고 위안했습니다. 더욱이 내 아이는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방심을 했죠. 내가 비록 엉망이긴 해도, 애 앞에서 크게 티가 안 났나 보다 안심했었습니다. 내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그런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신문 기사에서 조용한 ADHD에 관한 글을 읽게 됩니다. 여자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흔히 아는 과잉행동이 없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을 읽게 되었죠. 그런데 그 체크 항목들이 묘하게 머리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야. 이거 봐봐. 신경 쓰여야 해.' 이렇게 누군가가 제게 속삭이는 느낌이요. 전부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니딸이 이렇다고? 전혀 아냐~" 이런 반응이었지만, 마음속 한 구석의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졌죠.
결국 제가 사는 지역의 가장 유명하다는 소아정신과에 예약전화를 걸었습니다. 자그마치 대기만 일 년이라는 소리에, 일 년 뒤에라도, 천천히 시작하자라는 생각으로 예약을 했었죠. 10개월간 애써 잊고 지내며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 예약이 당겨졌다며 오겠냐는 전화를 받고 두근거렸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지 않아하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꼭 가야 하고, 가서 검사받고 나면 엄마랑 영화도 보고 재미난 것도 하자고 꼬셨습니다. 그리고 검사를 하던 날, 아이는 기나긴 대기시간과 너무나 긴 검사시간에 지쳐 터덜터덜 나왔고, 전 검사 결과 자체가 그다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예감했습니다.
일주일 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유명한 소아정신과는 너무나 많이 쏟아지는 환자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밤 11시 30분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하더군요. 정말 황당했지만 아이를 재우고 밤 11시 30분에 가서 12시에 교수님을 뵙게 됩니다. 검사 결과는 처참했죠. 그중 가장 심각했던 것은 소아 우울증. 우울증이 극심해서 언어능력 저하와 집중력 저하를 보이는 상태였죠. 그리고 제가 아이와 지내면서 가장 답답했던 증상은 아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해리 증상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12시 30분쯤. 아무도 없는 병원 앞 대로변에서 한참을 멍하게 서있었습니다. 10년 넘게 일 년에 백여 권씩 읽어치웠던 육아서들, 심리학 서적들.. 도대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군요. 저는 여전히 망가진채 고쳐지지 않았고, 무언가 하나에 오래오래 집중하기 힘들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육아는 철저하게 망가져 있었습니다. 제가 왜 살아야 하는 건지, 왜 집에 돌아가야 하는 건지, 왜 존재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야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그때는 제가 제 인생에서 가장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던 육아가 정말 실패했다는 충격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었기에 그 실망감은 더 컸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멍한 채로 집에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