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젊은 시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Nov 13. 2023

결핍과 애틋함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머리가 굵은 지금에야 어느 정도는 취향을 바탕으로 예고편만 보고서도 좋아할 영화나 싫어할 영화를 분간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는 구분할 여지가 없었다. 아빠가 종종 무협지를 빌려보던 책 대여점에서는 비디오 가게도 겸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빠가 무협지를 빌리러 가면 꼽사리로 한 두 개씩 비디오테이프를 같이 빌릴 수 있었다. 내가 혼자 가서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영화 취향이랄 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정도면 영화 감상을 취미로 삼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영화를 보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 감상 자체야 일반적인 취미지만 유별나게 이 취미에 애틋해진 건 뼛거리던 내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잊지 않으려면 이런 종류의 어려움이 필연적인 걸까? 노란문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문득 그때의 생각이 났다.


 90년대에는 지금처럼 안정적이고 다양한 채널이 있었던 게 아니다 보니 영화를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사람들도 일일이 발품 팔아 정보를 찾아야 했다. 모르는 사람과 연락할 수단 또한 마땅치 않아서 만남의 광장 같은 장소에 쪽지를 써서 남기는 식으로 연락처를 남기곤 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모습이기도 하다. 개인정보를 그렇게 남겼다간 온갖 출처의 전화가 쏟아질 테니까. 그렇게 만남이 이어지다 보니 모인 사람들의 열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낭만의 시대에 영화는 무척 상징적인 매개체가 아닌가. 다들 어렵게 모이다 보니 화 한 편 한 편을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영화들을 정리한 책자 또한 몇 종류 없었다. 더듬더듬 영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코끼리를 더듬어가며 노란문 사람들은 영화를 상상했다. 여백이 많았으니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재밌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인생이 꼭 필연만으로 굴러갔다면 무척이나 단조롭고 뻔해 보였을 것이다. 우연이 더해져 인생은 훨씬 더 다채로워진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인연은 예측할 수 없었던 만남이었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걸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은 취미 모임에 적용해 볼 때 딱 알맞게 떨어진다. 더하거나 빠지는 아쉬움이 없다. 어차피 만날 인연이었던 거다. 나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모임을 했던 적이 많이 있었는데 보면 다른 것보다도 삶의 태도가 비슷하다고 느낄 때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시간이 걸더라도 만나기는 했겠구나 싶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무정형의 모임이 운영되고 굴러가려면 예상을 뛰어넘는 열정이 필요하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에너지는 쉽게 사그라들기 마련이니까.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집착에 가까운 관심과 열정이 필요했다.


 결핍은 집착의 원인이다. 결핍이 열정을 만들기도 한다. 누락된 요소를 채워나가기 위한 여정이 길어질수록 열정은 깊어진다. 모임 내에 속해있는 사람들, 그 주변 사람들의 입을 빌어 그 전체적인 모양새를 맞춰나가는 여정은 무언가 짠하기도 했다.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모임의 탄생부터 저물어가는 과정까지 모든 일이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모임이나 공동체, 이런저런 활동에서 겪었던 일이 겹쳐 보였다. 저런 열정으로 시간을 들여서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본 적이 있었나? 방황하거나 결과적으로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의미가 있는가? 그 과정은 우리에겐 무엇이었고 나에겐 무엇이었나? 열정을 가졌던 그 시간을 정제된 고운 언어로 살려낸다는 게 무척 좋았다. 유독 그런 생각이 든다. 구성원들에게 좋았던 기억이라 그런 말이 쉽게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영화모임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모이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저마다의 이야깃거리를 들고 생각을 나눈다. 그렇게 5년이 넘어가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졸업하고 각자의 직장을 얻는 동안에도 모임은 계속되었다. 노란문 사람들처럼 전문적으로 영화를 연구했던 건 아니었지만 꽤 다양한 영화들을 보면서 생각을 나눴다. 발제의 이유, 이유에 걸맞은 영화 선정, 음식과 이야기. 이 모임이 잔잔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노란문 사람들의 말마따나 액체 같은 사람들이 기체 같은 꿈을 꾸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만의 취미였다면 아마 지금처럼 영화를 많이 보는 일도 없었을 거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렇다. 알고리즘에 맞춰진 추천 대신 모임 사람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이유와 감상평이 훨씬 매력적이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상호보완적인 결핍 관계. 공백이 얼마간 남아 있어서 앞으로도 조금씩은 채워지지 않아 애틋해졌으면 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매거진의 이전글 흐린 눈으로도 보이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