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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l 21. 2023

내 이름은 앨리스 거꾸로 해도 앨리스

"Was it a cat I saw?"


앨리스가 다녀온 이상한 나라는 이상한 애들이 많아서만 이상한 나라는 아니었다. 걸핏하면 목을 치라 목놓아 외치는 하트여왕처럼 모지리 캐릭들이 판치는 와중에도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양자역학 같은 체셔 고양이의 다양한 리들(riddle; 수수께끼)이 숨어있었다. (물론 책이 나온 건 1865년, 양자역학의 양字도 나오기 전이다)


위의 워즈잇어캣아이쏘를 거꾸로 읽어보자. 우리말 말고 영문을. 거꾸로 읽으나 바로 읽으나 똑같이 읽히는 걸 회문palindrome이라 한다. 돌아올 回 글월 文, 돌고 돌아 제자리인 글. 예를 들어 소주 만병만 주소 같은 돌림. 넘 옛날 옌가? 그렇담 기러기 토마토 역삼역 우영우.


돌고 도는 건 저자의 캐릭이기도 했다. 루이스 캐럴은 옥스포드대 수학교수였다. 논리와 명제 갖고 놀기가 특기요 돌고 도는 말장난이 무기였다. 귀가 입에 걸린 (혹은 반대인) 체셔 고양이에게 앨리스가 물었다. "어디로 가야 돼?" "어디로 가고 싶은데?" "어디든 상관없어." "그럼 어디로 가도 상관없겠네."


소설 속 앨리스의 모델도 실재했다. 옥스포드대 학장의 딸 앨리스 리들(Alice Liddell). 직장상사의 딸을 귀여워한 저자는 어린 앨리스 리들을 위해 리들이 가득한 이야기 속 앨리스를 창조했다. (물론 그 리들과 이 리들은 스펠링이 다르다) 극 중 앨리스가 이상한 버섯을 먹고 커졌다 줄었다 하는 장면에서 진짜 앨리스는 끝과 끝을 오가는 극한(lim)의 개념을 익혔을지도 모른다.


문학을 넘어 사회 예술 과학 다방면으로 세계적 영향을 끼친 앨리스지만 특히 일본에서 다양한 변주가 있어왔다. 넷플릭스의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배틀로얄과 오징어게임을 섞은 듯한 디스토피아에서 목숨 걸고 트럼프 카드를 깨 가는 미스터리 시리즈다. 시즌2에 이르러 신파가 질질 끌리긴 하지만 경기장마다 독특한 게임룰로 스피디하게 살생을 이어가는 초반 에피소드들이 임팩트 넘친다. 평행세계 속 수풀 우거진 도쿄는 태초로의 회귀를 바랐던 듯하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는 원전 캐릭터를 재해석하여 물고 물리는 평행세계 속 살인사건을 그리는 추리소설이다. 끝없이 말꼬리 잡는 장황한 대화에 읽다 지칠 만도 하지만 나름 원전 포인트들을 돌려 살린 오마주의 바퀴자국들이다. 제법 덕후가 양산된 모양인지 작가는 이후 도로시도 죽이고 팅커벨도 죽이며 동화 속 주인공들의 고로시(殺し) 시리즈를 이어가다 안타깝게도 본인의 회갑은 채우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오야스미나사이.


돌고 돌기론 알고리듬을 당해낼 게 없다. 아날로그 리듬으로 제각각 걷던 시절엔 상상도 못 한 획일에 갇혀 에코챔버의 무한 쳇바퀴를 뺑뺑이 돈다. 바로 몇 초 전 귀여운 냥이 영상 하날 눌렀을 뿐인데 어느새 피드엔 체셔캣도 놀라 자빠질 온갖 개냥이들이 천지빼까리로 도배된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스와트(SWAT)폰이라 해도 무방할 가공할 스피드다. 고양일 좋아해 망정이지 가짜뉴스라도 넘칠라치면 참으로 피곤한 일방라이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확증편향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있었다가 없고 없었다가 있는 가능성의 상자 속 체셔 고양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봐야겠다. 살았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더 유명한 상자 속 고양이는 슈레딩거 씨 댁에서 꾹꾹이 중이니 여기선 다른 상황을 살펴보자.



체셔캣 이펙트'란 게 있다. 고정된 한 점을 주목하면 주위의 물체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첨부한 그림으로 직접 해보시길) 우리의 두 눈은 세상을 두 가지 다른 시각으로 보고 각각을 시각 피질에서 결합하여 3차원 이미지를 생성한다. 한쪽 눈만 떠서는 거리도 부피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고차원적 생각을 위해선 말 그대로 다차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럴 때 회문이 적격이다. 앞으로도 읽고 뒤로도 읽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Was it a cat I saw?"

"내가 본 게 고양이였나?"


크로켓 경기장에서 하트여왕이 참수형을 선고하자 체셔캣의 몸은 사라지고 머리만 동동 떴다. 육체가 없는 머리를 참수한다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때아닌 논쟁이 촉발됐다. 이상한 나라가 한 차원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그 머리마저 유유히 사라지고 종래엔 씨익 웃는 입꼬리만 남자 앨리스가 외쳤다. "미소 없는 고양이는 많이 봤어도 고양이 없는 미소는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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