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고시 자가 들어가면 뭔가 있어 보이는 건지 신문/방송사 공채시험을 언론고시라 부르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언론고시 필기 전형엔 그리고 거의 항상 상식시험이 출제되었다. (지금도 그럴 걸?) 비단 이 동네뿐 아니라 웬만한 고시/공시생들에게 두툼한 상식책 한두 권쯤은 수학의 정석처럼 당연히 끼고 외우는 필수참고서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수험자에서 문제를 내는 출제자 입장이 된 지 오랜 지금 생각해 보면 수학공식처럼 달달 외우는 그런 상식이 과연 진짜 상식인지 의문이 든다. 상식이란 건 대체 뭘까? 실생활과 별 상관없는 상식도 상식일까? 아니면 변하지 않고 항상 똑같아야 상식일까?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하고, 그렇게 변하는 당장의 구체적인 사건에 일희일비하는 게 정상으로 보이는 바쁘다 바빠 현대인의 삶에서, ○○○의 법칙 따위 알량한 용어 하나 더 외워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에 지식의 보유는 개인의 취미 이상 특별한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취미를 누구보다도 즐기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그래서 오히려 지식 자체가 곧 교양이 되는 건지 의심을 더 품게 된다.
이 책은 잘 정리된 상식 교과서다. 다양한 용어들이 필요에 따라 잘 정리돼 있어서 수험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생존 교양》이라는 책제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 지식모둠을 교양이라는 포장지로 팔아야 하는 현실이 납득되기 때문이다. 누가 한줄평에 이런 말을 남겼다. 보케뷸러리 많이 외운다고 영어 잘하나요?
이 책 한 챕터이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세 키워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잠시 빌려봐도 좋겠다. 에토스는 도덕이다. 영어로 윤리의 ethics를 생각하면 되겠다. 파토스는 감정이다. 작품에 무슨 페이소스가 담겼다 할 때 그 단어다. 로고스는 이성이다. 누구 말이 로지컬하다 하는 그 논리다.
이성의 시대에 살면서 우린 로고스 > 파토스 > 에토스 순으로 중요한 것처럼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이성을 감정이 지배하고, 감정을 평판이 통제한다. 우리는 팩트를 믿는 게 아니라 팩트라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가 파토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아무리 말발로 누르고 감정에 호소해도 결국 신용을 판가름하는 건 그 사람의 됨됨이 성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사람을 설득함에 있어 중요성을 에토스 60, 파토스 30, 로고스 10으로 봤다.
이게 상식이다. 머리보다 심장이, 심장보다 영혼이 강하다, 는 것을 아는 것. 뭣이 중헌디? 달달 외운 답보다 부단히 던지는 질문이 중하다. 그런 인재를 만나고 싶어서 언제부턴가 정해진 답 대신 열린 의견을 구하려 노력한다. 말처럼 쉽진 않다. 고차방정식을 풀려면 구구단부터 외워야 하는 것, 그것도 부정 못할 상식이긴 하니까. 알려면 어쨌든,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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