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엄니가 사시는 지역의 면소재지에는 ‘아시안 마트’ 비슷한 이름의 가게들이 여러 개 있다. 주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향신채인 고수가 없으면 쌀국수를 먹지 않고, 코를 자극하는 향신료들(어느 나라의 것이든)을 좋아하는 나도 엄니 집에 가면 그곳에 들러 먹거리를 사 오곤 한다.
10년 정도 됐을까. 면소재지에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지면서 상권이 활기를 띤 것이. 한때 면민들로 북적이던 그곳은 인근에 혁신도시가 생기면서 상권이 쇠락하다가 언제부턴가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 연일 문을 열었다. 이제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한국인보다 이주민들을 더 많이 보는 곳이 됐다. 이주노동자들이 침체된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들은 주로 인근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한다. 엄니가 가끔 품을 팔러 가는 수박 하우스나 육묘장 같은 곳에는 한국인 노동자보다 이주노동자 수가 더 많다. 동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이주민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그들을 ‘걔네들’ ‘쟤네들’이라고 부른다. 국적이나 민족, 연령, 성별, 종교 같은 것들은 그들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그냥 ‘걔네들’이다. 저 멀리 어딘가로 밀어내는 듯한 단어 ‘걔네들’ ‘쟤네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시골 어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시각이 ‘걔네들’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인식하지 못하는 새에 타인이 내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그들을 알아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어른들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은 우리가 잘 모르는 타인들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기록이다.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타인은 우리나라에 사는 무슬림들을 말한다. 대학교에서 이슬람과 문화예술을 가르치는 저자는 어느 날 우리나라에 무슬림들의 예배소인 모스크가 얼마나 있는지, 문화예술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도착한 곳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었다.
저자는 글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정확하지 않은 의미로 혼용해서 사용하는 ‘이슬람, 무슬림, 중동, 아랍’ 단어의 정의를 내린다.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처럼 종교를 말한다.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신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중동은 지역적인 구분을 할 때 쓰는 말로 좁게는 지중해 동쪽부터 페르시아만 인근 국가까지, 넓게는 북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지역이다. 아랍은 언어와 민족으로 구분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어를 쓰는 아랍 민족,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쓰는 페르시아 민족,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어를 쓰는 말레이 민족이다.
이슬람은 전 세계 인구의 25퍼센트가 믿는 종교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슬람은 여전히 낯선 종교다. 이슬람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묻는다면 많은 한국인들이 9.11 테러, ISIS, 탈레반, 지하드, 참수, 폭격, 자살테러 등을 대답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그들을 직접 경험한 일이 거의 없다. 언론에서 말하는 것은 위에 나열한 단어와 관련한 사건들이다. 이런 경험에 따르면 ‘이슬람(무슬림들)=위험’이라는 공식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무슬림과의 공존을 말하는 저자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럽다. 국가의 안보와 인권의 두 길을 앞에 두고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제시한다.
이슬람이기 때문에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이슬람이 사용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피해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안게 되었다. / 139p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다’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두 문장 모두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테러리스트 중에 무슬림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라면 전 세계 인구의 25퍼센트가 테러리스트라는 뜻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책에는 대구 경북대 앞에 모스크를 건설하는 문제로 무슬림들과 지역 주민들이 충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스크 건설 현장에 모스크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들이 걸렸다. 그중에는 혐오가 담긴 표현들도 있다. 요약하면 ‘꺼져!’라는 뜻이 담긴 말들. 혐오와 배제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는 건 아닐까. 모든 면에서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 내 이웃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렇다면 알면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들은 더 이상 조용한 이방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노동자로 학생으로,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알아야 두려움이 없어지고, 공포를 근간으로 하는 혐오와 배제도 사라진다. 저자는 말한다.
나와 다른 타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자꾸 답을 찾아가야 하는 질문은 ‘왜 이들이 여기에 살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 58p
일단 이 책에 나오는 무슬림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한걸음만 나아가 보자. 이슬람과 무슬림과 중동과 아랍이 어떤 뜻인지 궁금해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