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10일, 처음으로 나의 디자인 상품 페이지가 올라갔다.
그래서 한 해동안 수입과 지출 정산을 매월 10일로 잡고 지내왔다.
홀로서기 1년이 다 되어가기에 그간의 수입 내역을 정리해 봤다.
그리고 현타가 왔다.
팔 수술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한 몇 개월을 감안한다면, 직장에서 벌던 만큼 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직장 다닐 때처럼 주 5일 풀타임으로 일한 것도 아니었고, 나 쓸 시간 다 쓰고, 애나 내가 아프면 쉬어가면서, 원하는 곳엔 어디든 갈 수 있는 삶을 살며 일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고..? 생각보다 나.. 대단한 것 같아.
나 혼자서도 이렇게 벌 수 있었는데, 왜 그동안 그런 더러운 꼴을 당하고 살았을까.
내 인생 가장 역겨운 사람에게 추행당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속이 메스꺼워질 때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아니야, 그때의 나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때의 내가 버티고 버텨서 지금이 있을 수 있는 거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고, 그렇게 모으고 버텨서 지금이 있다.
지옥 같았던 8년의 시간 동안, 나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세 채의 집을 사고팔며 신축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했고, 두 대의 차를 샀다.
그리고 퇴직 후 소득 없이 버틸 수 있는 1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고정적이고 탄탄한 수입이 필요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오늘을 만들었다.
사회를 배우고 더러운 인간의 본성을 배웠다.
울며 불며 나의 모진 부분을 다듬고 능력은 키우는 시간이었다.
거기서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더라면 이토록 안정적인 오늘은 없었으리라.
요 몇 개월 돈에 치여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 멘털이 탈탈 털려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약한 멘털을 가졌는지 절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견뎠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라도 외우고 다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맞다.
퇴사하고 집에서 일해요. 프리랜서예요.라고 말하면 모두가 부러워한다.
아이도 보고 집에서 일하면서 돈 버는 삶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조건이다.
아이와 원하는 만큼 자고 아침을 맞이하고, 투닥거리며 등원하고, 하루를 깨우는 운동을 한다.
원하는 음식을 혼자서 차려먹고, 고스란히 나의 수입과 경력이 되는 일을 혼자서 해낸다.
그걸로 돈을 벌고 인생을 살아나간다.
매 순간이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로보단 질투를 받기 충분한 일상이다.
물론 프리랜서는 불안정하고 늘 발버둥 치며 살아남아야 하는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 한다.
스스로 하루의 루틴을 짜고 지키며 살지 않으면 무너지기도 쉽다.
건강을 잃고 원동력을 잃으면 자칫 그냥 멈춰 서서 뒤쳐지기도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번 다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고 돈을 벌겠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절대로 두 번 다시 그러지 않을 것이다.
버티고 견디는 시간은 인생에 한텀이면 됐다.
버티고 견디더라도 나의 일을 위해 하자.
나는 생각보다 잘 해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들, 자랑 같아서 다른 곳엔 쓸 수 없다.
나 퇴사하고 내 힘으로 잘 벌어먹고 산다.
시간도 내 맘대로 쓰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애도 잘 큰다. 그런 이야기들.
자랑이 미덕이 아닌 세상에 꺼내기 조차 쉽지 않은 이야기들.
하지만 어떤 날은 내가 이룬 것들을 곱씹어보며 스스로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 오늘처럼.
앞으로의 1년, 10년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