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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롸이트 Sep 25. 2023

나의 유년과 헤어지며

올 초에 교회를 옮겼다. 20년 가까이 다닌 교회였다. 


길고 긴 시간만큼 무수한 상처들이 있었고, 가족 같은 마음으로 견디고 버티다 떠나왔다. 


마지막은 상처투성이였고 꽤 오래 힘들었다. 


새로운 교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교회에서 떠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도 언젠간 떠나게 되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애초에 마음을 안 주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


옮긴 교회에서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유년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뜨겁고 신실하고 마음을 다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함께했던, 사랑했던 지체들이 떠오르고 그 모든 것을 앗아간 원흉들에 분노가 치밀었다가 어느 순간엔 그냥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럴 때마다 내가 떠나온 이유를 떠올렸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틀어쥐고 흔들던 것들, 완전히 끊어내지 않으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굴레들 다시 돌아간다면 이전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겠지.


사랑하는 사람들도 증오하는 사람들도 한데 모여있으니 좋은 점은 금방 익숙해지고 힘든 일만 반복되겠지. 


그때로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선택을 하리란 생각에 닿고 나서야 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이런 미련스러운 감정이 뭘까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아무와도 이별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남자친구이자 마지막 남자친구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고, 중간에 헤어져 본 적도 없다. 


인간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한 순간에 다시 못 볼 남남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한 것은 불과 2,3년 사이의 일이다. 


서른이 넘도록 거의 겪지 못한 일들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겪었다. 


친구, 직장, 교회 그리고 심지어는 가족과도 헤어질 뻔했다. 


다행히 가족은 지켰지만 나머지는 모두 조금씩 혹은 전부 잃었다. 


한 번에 그런 상실감이 동시에 몰려오다니. 누군가는 인생이 반전될 길목에 있어서라고도 하더라. 


확실히 주변사람들이 거의 사라지고 나니 인생이 한결 홀가분해지고 단순해지긴 했다. 


나는 애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어져있을 재간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찌 됐든 지금 겪는 이 감정들은 마치 연인과 헤어졌을 때 느낀다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았다. 


좋았던 것만 생각나고 종종 다시 그때로 돌아가보자 붙잡고 싶은 미련이 남는 시기. 


이것도 지나가면 다 괜찮아지겠지. 점점 흐려지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아직도 찬송가만 들으면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나의 어리고, 뜨겁고, 눈물 많던 시절의 기억들이.



헤어진 연인, 혹은 짝사랑했던 마음을 접는 데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간만큼의 시간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얼추 맞는 말 같다. 


그러므로 내가 모교회를 잊어내야 할 시간은 앞으로 20년이 되겠지. 


조금 막막하고 먹먹하지만 별 수없다. 


때로는 힘나는 다짐으로 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는 날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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