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의 추락’ 옐리치와 벨린저는 부활할 수 있을까

by 박민규

2011시즌 NL MVP 경쟁은 라이언 브론(밀워키)과 맷 켐프(다저스)의 2파전으로 전개됐다. 그 해 8월까지 타율 .333 25홈런 89타점의 브론과 타율 .320 31홈런 102타점의 켐프의 마지막 한 달은 더욱 뜨거웠다. 9월 한 달간 90타석 이상 소화한 내셔널리그 타자 중 OPS 순위에서 켐프가 2위(1.086), 브론이 4위(.988)를 차지하면서 두 선수의 기세는 마지막까지 맹렬했다.


2011시즌 라이언 브론/맷 켐프 시즌 성적 비교

브론 : 150경기 .332/.397/.597/.994 33홈런 111타점 33도루 7.7bWAR

켐프 : 161경기 .324/.399/.586/.986 39홈런 126타점 40도루 8.0bWAR


2011시즌 NL MVP 투표 결과

1위 라이언 브론 : 총점 388점/1위표 20장

2위 맷 켐프 : 총점 332점/1위표 10장

3위 프린스 필더 : 총점 229점/1위표 1장

4위 저스틴 업튼 : 총점 214점/1위표 1장

5위 앨버트 푸홀스 : 총점 166점/1위표 0장


치열한 MVP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는 브론이었다. 장타와 장타율 그리고 OPS에서 NL 1위를 차지한 브론은 1970년 토미 하퍼(31홈런-38도루) 이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팀 역대 두 번째 타자가 됐다. 팀이 1982년 이후 29년 만에 첫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투표에서 큰 플러스 요소가 되면서 1989년 로빈 욘트 이후 MVP를 수상한 팀 역대 네 번째 선수가 된 브론은 밀워키가 내셔널리그로 자리를 옮긴 후 MVP가 된 첫 번째 선수이기도 했다.


반면 켐프는 운이 따르지 못했다. MVP급 성적임에는 분명했지만 다저스가 11.5경기차 지구 3위에 그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것이 투표에서 감점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시즌 마지막 경기 네 번째 타석에서 39호 홈런을 날리며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46홈런-41도루) 이후 메이저리그 역대 5번째 40홈런-40도루를 눈 앞에 두고 있던 켐프는 그러나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나며 달성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9월 8일(한국시간) 비로 취소됐던 경기가 그 다음날 더블 헤더로 편성됐지만 또 다시 비가 내리면서 2차전이 취소된 것이 켐프에게 변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해 12월, 실망스러우면서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브론이 도핑 검사에서 합성 테스토스테론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5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게 된 것. 2011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5년 1억 500만 달러의 추가 연장 계약(2016-2020)을 체결했고 MVP 수상 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브론은 자신은 약물에 대해 당당하다는 듯 출장 정지 처분에 대한 항소를 신청, 승리를 거두고 징계가 철회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2013년 1월, 플로리다의 지역 언론인 ‘마이애미 뉴 타임즈’가 바이오 제네시스 스캔들을 폭로한 것이다. 브론 역시 이 클리닉을 통해 금지약물을 공급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65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게 됐다.


8년 후인 2019시즌, 밀워키와 다저스를 대표하는 타자들의 MVP 경쟁이 다시 한 번 전개됐다. 마이애미에서 트레이드되어 2018시즌 NL MVP를 차지한 크리스찬 옐리치(밀워키)와 2017시즌 NL 신인왕 수상 후 이듬해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던 코디 벨린저(다저스)였다. 옐리치와 벨린저는 브론과 켐프가 그랬던 것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며 우열을 가리기 힘든 활약을 펼쳤다.


2019시즌 코디 벨린저/크리스찬 옐리치 시즌 성적 비교

벨린저 : 156경기 .305/.406/.629/1.035 47홈런 115타점 15도루 8.6bWAR

옐리치 : 130경기 .329/.429/.671/1.100 44홈런 97타점 30도루 7.3bWAR


2019시즌 NL MVP 투표 결과

1위 코디 벨린저 : 총점 362점/1위표 19장

2위 크리스찬 옐리치 : 총점 317점/1위표 10장

3위 앤서니 렌돈 : 총점 242점/1위표 1장

4위 케텔 마르테 : 총점 198점/1위표 0장

5위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 총점 155점/1위표 0장


벨린저는 MVP를 수상하면서 켐프에 대한 다저스 팬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줬다. 1988년 커크 깁슨 이후 MVP를 수상한 첫 다저스 야수가 된 벨린저의 초반 페이스는 역대급이었다. 첫 두 달간 56경기에서 타율 .379, OPS 1.214, 20홈런으로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보여줬던 벨린저는 3, 4월에는 무려 타율이 .431, OPS가 1.397에 달했다. 이후 100경기에서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OPS .933, 27홈런으로 여전히 훌륭한 공격 생산력을 보여준 벨린저는 다저스의 7년 연속 지구 우승에 앞장서면서 1위표 19장을 받아 MVP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옐리치의 또한 만만치 않았다. 2018시즌 타율, 장타율, OPS에서 1위에 오르면서 MVP를 수상했던 옐리치는 2019시즌에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에서 1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전반기에만 31홈런-19도루로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 50홈런-30도루에 도전하기도 했다.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떨어진 벨린저와는 달리 여전히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었던 옐리치는 그러나 9월 11일, 마이애미전 첫 번째 타석에서 자신의 파울볼이 무릎에 맞아 슬개골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그대로 시즌 아웃 되었고 130경기 출장에 그치면서 2년 연속 MVP 수상은 달성하지 못했다.


엄청난 활약을 펼친 옐리치와 벨린저는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았다. 2020년 3월 7일, 옐리치는 밀워키 역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9년 2억 1500만 달러 연장 계약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벨린저는 2020시즌 1150만 달러를 받는데 합의하면서 첫 번째 연봉 조정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듯 2018, 2019시즌 MVP를 나눠가진 옐리치와 벨린저의 시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했다.


그러나 옐리치와 벨린저는 이후 거짓말처럼 동시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20시즌 첫 8경기에서 각각 타율 .088, .139을 기록하며 최악의 출발을 한 옐리치와 벨린저는 MVP급 활약을 펼쳤던 이전 시즌들과는 분명 괴리가 있는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희망적인 점은 옐리치는 여전히 뛰어난 선구안과 함께 많은 질 좋은 타구를 만들어냈고 벨린저는 포스트시즌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저스가 1988년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보탬이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준비가 어려웠고 단축 시즌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혀 이해하지 못할 부진은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였지만 두 MVP 출신은 지난해 더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두 차례의 등 부상과 코로나19 감염으로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옐리치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질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밀워키 이적 후 세 시즌 동안 평균 타구속도 93마일과 14%의 배럴 타구 비율을 유지했던 옐리치는 지난해 평균 타구속도가 90.6마일, 배럴 타구 비율은 7.6%에 그치면서 장타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옐리치의 장타율은 .373, OPS는 .736으로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낮았다.


벨린저의 부진은 더 심각했다. 시즌 초반 저스틴 터너의 본헤드 플레이로 홈런이 취소되는 불운과 종아리 부상이 겹치며 녹록치 않은 출발을 한 벨린저는 옐리치와 마찬가지로 배럴 타구 및 하드 히트 비율 급감을 피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평균 11%, 43.1%였던 배럴 타구와 하드 히트 비율은 각각 7.1%, 34.4%까지 떨어졌다. BABIP가 .195로 불운하긴 했지만 시즌 최종 타율은 .165, OPS는 .542에 불과했으며 대체선수보다도 못한 -1.5의 레퍼런스 기준 WAR은 분명 벨린저와는 거리가 먼 성적이었다.


그렇다면 옐리치와 벨린저가 이토록 갑작스러운 추락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2013시즌부터 2019시즌까지 7년간 옐리치는 패스트볼 계통을 상대로 타율 .342, 86홈런을 기록할 만큼 빠른 공 공략을 잘하는 타자였다. 그러나 패스트볼 계통 상대 헛스윙 비율이 데뷔 후 처음으로 20%를 넘어선 2020시즌, 당시 패스트볼 상대 타율은 .239에 불과했다(헛스윙 비율 25.2%). 지난해에는 패스트볼 상대 타율이 .263로 소폭 회복되긴 했지만 문제는 장타 생산력이었다. 밀워키 이적 후 3년간 .633에 달했던 패스트볼 상대 장타율은 지난해 .384까지 떨어졌다.


옐리치가 고전한 것은 커터나 싱커와 같은 변형 패스트볼이었다. 지난해 포심 상대 타율과 장타율은 .273와 .420으로 비교적 양호했던 반면 변형 패스트볼을 상대로는 .244와 .317에 그쳤다. 옐리치는 MVP급 활약을 펼친 2018, 2019시즌 동안 변형 패스트볼을 상대로 때려낸 홈런이 18개였지만 지난해에는 단 한 개의 타구도 담장 밖으로 날리지 못했다. 무너진 밸런스는 변화구를 상대할 때도 그 여파를 미쳤는데 옐리치가 브레이킹볼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2014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크리스찬 옐리치, 구종 상대 성적 변화(타율/장타율/타수당 홈런)

포심(18-20) : .355/.701/10.1타수

포심(21) : .273/.420/30타수


싱커, 투심(18-20) : .300/.531/19.5타수

싱커, 투심(21) : .279/.377/61타수 0홈런


커터(18-20) : .349/.675/13.8타수

커터(21) : .143/.143/21타수 0홈런


브레이킹볼(18-20) : .264/.546/13.6타수

브레이킹볼(21) : .196/.277/97타수 0홈런


2019시즌 종료 후 벨린저는 곧바로 타격폼 수정을 진행했다.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서의 체력 저하로 인한 부진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60경기 단축 시즌은 새로운 타격폼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짧았고 결국 벨린저는 지난해 확연히 눈에 띄는 오픈 스탠스로 다시 한 번 타격폼을 수정했다. 수정한 타격폼에 적응하려던 찰나 지난해 4월 6일 오클랜드전에서의 종아리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부상자 명단에 오른 벨린저는 5월 말이 되어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패스트볼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벨린저 역시 피차일반이었다. 변형 패스트볼을 상대로도 고전했지만(싱커, 투심 .079/커터 .071), 벨린저를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은 바로 95마일 이상의 강속구였다. 부상 복귀 이후부터 9월 10일 세인트루이스전까지 벨린저는 95마일 이상 강속구를 상대로 타율과 장타율은 .085와 .128에 불과했고 삼진 비율은 무려 48%에 달했다. 강속구에 대항하기 위해 마침내 벨린저가 꺼내든 카드는 다시 한 번 타격폼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고무적인 점은 벨린저의 타격폼 수정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벨린저는 준비 자세에서 배트의 머리 부분을 좀 더 세우고 동시에 발의 위치를 다시 스퀘어 스탠스로 바꿨다. 9월 12일 샌디에이고전부터 새로운 타격폼으로 타석에 임한 벨린저는 이후 강속구를 상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강속구 대처가 가능해진 벨린저는 이후 남은 정규시즌 경기와 포스트시즌에서 95마일 이상 빠른 공을 상대로 타율 .467(15타수 7안타) 홈런 두 개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던 2019시즌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으로 올 시즌을 기대케 했다.


코디 벨린저, 95마일 이상 강속구 상대 성적 변화(타율/장타율/삼진 비율)

2017시즌 : .256/.474/25.6%

2018시즌 : .238/.513/37.1%

2019시즌 : .255/.543/22.5%

2020시즌 : .167/.262/19.1%

2021시즌(5월 30일~9월 10일) : .085/.128/48%

2021시즌(9월 12일~10월 25일) : .467/1.000/29.4%


2020시즌이 끝난 후 모두가 옐리치와 벨린저의 부활을 예상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옐리치와 벨린저는 지난해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부진은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그리고 팬들에게도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MVP를 수상했을 만큼 그들의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옐리치와 벨린저는 올 시즌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올 시즌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두 MVP 출신 타자는 부진의 연속과 부활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기록 참조 : 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 스포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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