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경장편 소설
집으로 돌아온 도희는 잠들기 전 책상 위에 단추를 올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단추에 새겨진 글자가 ‘환’이 맞다면 채은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미신을 따를 만큼 무엇인가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다. 오컬트나 귀신 분야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살아오면서 어떤 것을 그렇게까지 원한 적이 없었던 도희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감정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발을 담그게 만드는 힘이 무엇일지, 만약 가족이나 친구들이 사라지면 이런 소원을 빌게 될까 막연하게 상상하던 도희가 단추를 집어 들고 침대로 향했다. 머리맡에 휴대폰과 함께 단추를 내려놓은 다음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았으나 포근한 이불속에 눕자 금방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축축한 물기가 뺨에 닿는 감촉에 잠에서 깬 도희는 이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카락 같은 것이 팔을 훑고 지나간다. 곧 배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어져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손가락만 겨우 꿈틀거릴 수 있었다. 결국 밤새 앓다 일어난 도희가 푸석해진 뺨을 쓸며 졸린 눈을 비볐다.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하루 사이에 다크서클을 달고 온 도희를 보자마자 놀란 해주가 달려왔다.
“괜찮아?”
해주만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아도 하리 역시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잠이 더 급한 도희가 단추를 넘기고 책상에 엎드렸다. 여전히 간질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 가위눌렸어.”
저녁 메뉴를 말하는 것처럼 평이한 말투였지만 둘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도희는 얼른 팔을 들어 손을 휘휘 저었다.
“근데 몸이 안 움직인 거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 배 위에 앉아 있었는지 배가 엄청 무겁더라고. 뭐가 더 보이지도 않았고.”
축축함과 간질거림, 무게감 외에 도희를 괴롭힌 다른 증상은 없었다. 도희는 이 존재가 누군가를 해칠 생각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리는 알아낼 수 있지 않겠어?”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는데….”
단추를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도중 교실 문이 열리고 채은이 들어왔다. 어제보다는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하리가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바로 채은을 부르려는 도희를 말렸다. 영 아쉬운지 자리로 돌아가는 내내 도희는 채은을 쳐다봤다.
채은은 오전 내내 평소처럼 수업에 집중했는데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단추 기도의 부작용 때문에 몸 상태가 나빠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지만 여전히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하리에게 해주가 물었다.
“그 단추, 내가 만져보면 안 돼?”
해주는 도희와 하리의 철저한 사수 끝에 한 번도 단추를 만져보지 못했다. 하리는 더 큰 고민에 빠졌다.
별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한데 과연 해주가 안전할까? 하리가 주저하는 것이 느껴졌는지 해주가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 너희가 있잖아.”
더 이상 말릴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단추를 내밀자 해주는 망설임 없이 단추를 집었다. 약한 온기 외에 느껴지는 건 없었다.
“너희 그거 어디서 났어?”
갑자기 나타난 채은이 다급하게 해주의 손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단추를 가져가려는 그때 해주가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강아지?”
채은은 그대로 굳어 해주를 쳐다봤다. 서서히 일그러지는 얼굴에 슬픔이 고이기 시작했다.
“루비가….”
해주가 끝맺지 못한 말 대신 흘러나온 눈물이 떨어졌다. 하리와 도희는 동시에 단추 기도의 내용을 알아챘다. 해주를 바라보는 채은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해주가 더듬더듬 어렵게 말을 이었다.
“언니가…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대….”
의아해하는 반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건물 뒤쪽으로 나온 하리와 도희는 지혜를 데려와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해주와 채은을 달랬다. 누가 보면 싸우고 화해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할 만큼 괴상한 광경이었다.
먼저 진정한 해주가 단추를 채은의 손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숨바꼭질하고 싶었대. 언니가 자기를 불렀으니까 찾은 거고 이제 루비가 숨을 차례래.”
채은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몰래 방에 들어가 이불속에 숨어있으면 오래 걸리지 않아 타닥타닥 바닥을 밟는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느껴지는 무게감에 이불을 들어 올리는 순간 잔뜩 신이 난 꼬리가 보인다. 왕 하고 작게 짖은 루비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거실로 달려가고 조용히 나가보면 커튼 뒤나 쇼파 뒤에 작은 엉덩이가 보였다. 숨바꼭질은 둘이 가장 좋아하던 놀이였다.
“우리 루비….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거지?”
해주는 종아리를 스치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촉촉한 물기가 톡톡 흔적을 남기다 멀어졌다.
“강아지 이름이 루비야?”
하리의 시선이 채은의 발치에 닿았다. 채은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곁에 있던 내 동생. \
“루비가 아프기 시작해서…. 집에 갔더니 나 학교 간 사이에 병원에 입원시켰다는 거야.”
몸집에 비해 사랑을 지나치게 많이 나눠줬기 때문일까. 루비는 심장이 고장 났다. 수술 후 안정을 위해 만나지 못하게 된 루비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어느 날, 길에서 낡은 단추를 발견한 채은은 자신도 모르게 가져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끝이 뭉개진 샤프와 글자가 새겨진 단추가 책상에 놓여있었다.
동생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와 함께 단추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천천히 번졌다.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어. 루비는 아마 수술하고 얼마 안 지나서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거야.”
더 오래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생의 일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간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 내가 어제 이 단추를 갖고 집에 갔었는데 밤새 가위눌렸었거든. 너도 그랬어?”
도희의 질문에 채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매일 가위눌리는 바람에 잠을 못 자서 쓰러졌던 거야.”
“루비가 아니라 다른 귀신인 걸까?”
해주와 하리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 의미를 이해한 채은이 바닥을 내려다봤다. 도희도 주먹으로 손바닥을 살짝 쳤다.
“괴롭히는 게 아니었구나.”
“… 루비는 항상 나나 다른 가족이 누워있으면 배 위에 올라가려고 했어. 내가 슬퍼하니까 위로해 주러 왔나 봐.”
채은에게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움과 후회, 반가움이 섞인 숨이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단추를 만지작거리던 하리가 채은의 손을 잡았다.
“좋은 곳으로 가있을 테니까 많이 울지 말고 꼭 다시 만나자고 하네.”
“루비야….”
빨개진 눈을 다시 눈물이 채웠지만 흐르지는 않았다. 맑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소중한 가족을 떠올렸다. 늘 허전하고 보고 싶겠지만 조금 긴 숨바꼭질을 시작한 거라고,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채은은 하리의 손에 온기를 남긴 뒤 평범해진 단추를 부러뜨렸다. 단단해 보이던 단추는 과자가 부러지듯 쉽게 반으로 나뉘었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채은의 주변으로 짧게 바람이 스쳤다.
“원래 소문은 태워 버리는 거였잖아. 저래도 괜찮은가?”
“일반 쓰레기는 다 소각하니까.”
쓰레기통으로 떨어지는 단추 조각을 보며 해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주변을 빙글 빙글 돌다가 빛을 향해 사뿐사뿐 멀어지던 꼬리를 본 하리만이 괜찮을 거라며 안심 시켰다. 채은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수업을 들었고 교실은 금새 평소의 공기로 돌아왔다.
“나는 반려동물은 진짜 못 키울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온 도희가 기지개를 켰다. 해주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가족인데. 사랑하는 대상이 너무 짧은 생을 살다가 가버리는 건 힘든 일이야.”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는 하리를 보며 해주는 이제 만나지 못한다는 하리의 친구를 떠올렸다. 아무리 가까워진다고 하더라도 하리의 마음속에는 그 친구가 가장 클 것 같았다. 욕심이라고 잡생각을 몰아내 봐도 자꾸 번져가는 서운함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자신이 잠을 잘 자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