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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Feb 21. 2024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35

끝까지 간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늦장 부리는 바람에 이렇게 됐네."



"아냐 괜찮아. 새벽에 역 근처도 찍을 겸 해서 일부러 일찍 나왔어." 




새벽 6시 즈음 만난 두 남자는 곧바로 도로 위를 달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몇 주 전에 그의 친구가 단체 채팅방에 트레일 코스 구경을 제안했지만, 평일이었던 점과 너무 이른 시간에 모여야 했던 탓이었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남자 또한 같은 주에 있을 여행 준비와 함께 자잘한 일들이 껴 있어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언제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깝게 느껴졌던 캘거리의 겨울 시즌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추억을 남기고자 했다. 물론 계절이 바뀌더라도 계속 돌아다닐 그와 그의 친구들이었지만, 분명 날이 따뜻했던 때와는 다르게 많은 제약들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기름 좀 넣고 가자." 



"알았어. 혹시 씹을 거 필요해? 기름 넣는 동안 내가 좀 사 올게." 



"괜찮아. 주유소는 너무 비싸서 딱히 당기지가 않네." 



40분 정도를 가다가 한 작은 마을의 주유소에 잠시 멈춰 선 두 남자. 마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약간의 푸르스름한 하늘빛과 함께 홀로 빛나고 있던 주유소가 인상 깊었던 그는 보조석에서 내려 그의 친구가 주유를 마무리할 때까지 주변을 돌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단 몇 분 여의 시간 동안 한대의 차량도 지나가지 않았던 도로 옆 장소에서 찬 바람이 계속 몸을 감싸 안다 보니 묘한 공허함과 멜랑꼴리 한 기분까지 강하게 느껴졌다. 아직까지는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작게나마 실루엣만을 띄고 있던 산맥과 나무들을 구경하고 있던 그를 잠시 뒤 친구가 불렀고, 둘은 아까보다 조금 더 깨어난 정신으로 새로이 무장한 채 다시 아스팔트 위로 바퀴를 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여행이 얼마나 험난해질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두 사람은 음악을 들으며 한껏 들뜬 마음만을 가지고 점점 더 대자연 깊숙한 곳에 가까워져 갔다. 







첫 번째 코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즈음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을 거라던 예보와는 다르게 산봉우리 근처에 걸려있던 구름과 안개들은 희뿌연 색을 띠고 있었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던 그들은 눈으로라도 담아가자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카메라와 가방을 챙겼고, 질퍽거리는 진흙으로 변해있던 보행로를 따라 점점 주차장으로부터 멀어졌다.



한국처럼 길이 통제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그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은 몇 번씩이나 길을 헤매기도 했다. 사람의 발자취가 묻어있던 두 갈래 길이 나올 때마다 골치가 아팠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올라가는 길을 택한다고 해서 그게 정답은 아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모두 겪고 나서야 비로소 수풀 너머로 산등성이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거쳐 온 울창한 산림과 정상으로 향하는 중간의 지점에서 멈춰서 보았던 경치를 보며 그들은 동시에 탄생을 뱉어냈다.



계속해서 정상으로 오르려는 그들에게 하산 중이던 한 등산객이 지나가듯 말을 건넸다. 



"그리즐리 베어가 있어요. 마저 올라가려고 했는데, 너무 위험해 보여서 저쪽 위치 즈음에서 멈추고 다시 내려가는 중이에요."


"이런. 베어스프레이도 안 챙겨 왔는데 더 이상 가기에는 무리겠네요. 우리도 여기서 돌아가야겠다" 


"그러면 아쉬우니까 밑으로 나 있는 계곡 주변만 조금 더 보고 가는 건 어때?" 







그의 친구도 내심 아쉬웠는지 남자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산을 내려갔다. 흐르고 있던 물줄기 주변에 다다른 둘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진을 찍었다. 층이 나누어져 있던 곳을 가리키며 '작은 폭포'라고 불렀던 그의 친구는 가방에서 삼각대를 꺼내 장노출 방식으로, 남자는 최대한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온전한 자연의 모습들을 그의 카메라에 담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5분마다 날씨가 바뀌었던 바람에 정확한 노출을 잡는 게 굉장히 까다로웠지만, 반대로 그 덕분에 이후에 찍었던 몇몇 풍경사진 속에 는 선명한 무지개가 그림 안에 더해져 있었다.







점심시간에 가까웠던 시간에 다시 주자창으로 돌아온 그들은 챙겨 온 간식과 물을 마시며 아주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다음 코스로 향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코스 전체 길이가 꽤나 있어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비는 여전히 계속해서 내렸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지점을 지나갈 때에는 작은 눈 결정으로 바뀌어 날리기까지 했다. 아까와는 같은 옷차림이었지만 조금 젖은 상태로 2번째 코스에 접어들었는데, 얼마 안 가 그의 친구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던 걸 확인한 남자는 잠시 쉬었다 가자며 그를 멈춰 세웠다. 



"너 괜찮아? 엄청 지쳐 보이는데.." 



"괜찮아. 첫 번째 코스도 그렇고, 여기도 이렇게 가파른 줄 몰랐어." 



"가방 줘. 내가 오르막 끝날 때까지 들고 올라갈게." 



"네 짐도 무거운데 이걸 어떻게 주냐. 그냥 메고 갈게." 



"이러다간 끝까지 못 가. 너 호수 보고 싶다며. 별로 무겁지도 않네 뭘." 



그렇게 앞뒤로 가방을 둘러메고 2km 정도 되었던 오르막길을 지나 다시 짐을 넘겨준 뒤, 30분 정도를 더 걸어 두 남자는 한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에 가까워지면서 비가 그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해 조금 기대를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장난치듯 빗줄기가 전보다 훨씬 더 거세졌다. 멀리서 쉬고 있던 한 가족은 곧바로 돗자리를 접고 돌아갔고, 그들은 나무 밑에 숨어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추위에 떨며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간절함을 하늘이 알아들었는지 날씨는 10분 정도의 소강상태를 보였고,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둘은 곧바로 카메라 전원을 켜서 주변을 담았다. 







몸과 마음 모두 지쳤지만 조금만 더 가면 돌무덤을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해 가며 도착한 이날의 마지막 장소. 마지막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이곳에 머물렀던 시간 중 날씨는 가장 화창했다.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서로 기념사진을 각자 찍어준 것을 마지막으로 둘은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갔다. 중간에 친구가 건네주던 에너지바 한 개가 얼마나 맛있던지.. 그렇게 시작점에 서 있던 친구의 차량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서 화장실을 들린 뒤에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경치 좋으면 멈춰서 사진을 찍자고 아침에 얘기했던 둘이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사라져 있었고 오직 도착 예상시간과 저녁 메뉴만을 고민하고 있었다. 




국립공원을 빠져나와 캘거리에 들어서니 먹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그들을 반겼다. 운전을 하고 있던 친구는 F 단어가 섞인 욕을 내뱉으며 장난 섞인 화를 냈고, 그런 그에게 남자는 어찌 됐건 간에 오늘 목표했던 곳들을 전부 다 갔다는 것에 만족하자며 그를 다독였다. 둘 다 한 끼도 못 먹은 상태로 컵홀더에 놓여있던 견과류 봉지에 손을 기웃거리고 있던 중에 그의 친구가 물었다. 



"저녁 어떡할래? 먹고 갈 생각 있어?" 



"배고파 죽을 것 같아서 먹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살게. 너 먹고 싶은 곳으로 가자." 



"오늘 만났던 곳 근처에 초밥 무한리필 집 있는데 어때?" 



"캘거리에 그런 곳이 있어? 나야 너무 좋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초밥을 먹는구먼." 



"너무 기대하지는 마 하하. 나는 괜찮아서 친구들이랑 몇 번 갔었어. 거기 오늘 우리 때문에 매출 마이너스 나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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