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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Feb 21. 2024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36

9월과 10월 사이





9월의 마지막 금요일. 남자는 방문 앞에 미리 세워 놓았던 작은 캐리어 하나와 카메라 가방을 챙겼다. 지난번 북쪽으로 떠났던 여행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지만, 올해부터 다시 재개된 열기구 페스티벌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지역에서 열리는 것을 빌미 삼아 다시 한번 차를 빌렸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라면 1박 2일, 혹은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꾸려졌을 이번 여행. 그러나 주말 내내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는 소식과 더불어 렌터카 업체가 일요일에 휴무를 한다는 점으로 인해 그는 이전과 같이 4일간의 여행으로 계획을 바꿨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 때문에 차량을 픽업하기 전 날 까지도 짐을 챙기면서 동시에 여러 장소들을 찾아보았던 남자는 시작부터 삐걱댔던 탓에 설렘보다는 긴장을 더욱 안은 채로 픽업 장소로 향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제는 누군지 알아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직원들이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예약번호와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서 차량의 모델을 알려주었는데, 이번에 가야 할 장소들이 건네준 차량으로 가기에는 조금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약간의 불안감에 그는 곧바로 직원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물었다. 조금 고민을 하더니 바로 옆에 있던 자신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 그는 자리를 비웠고, 잠시 뒤 새로운 자동차 키를 가져와 그에게 건넸다. 



"이거 외부는 조금 더러운 상태인데, 상관없으면 이 차로 가져가. 지금 우리 업체가 가지고 있는 차량 중에서 제일 최신형이야." 



"오 정말? 난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만 아니면 상관없어. 이번에 갈 곳들이 거리도 있고, 외진 곳들을 많이 가야 해서 조금 불안해서 그래." 



"이번엔 어디로 가니?" 



"오늘 잠깐 열기구 페스티벌 들렸다가 동쪽으로 갈 거야. 가면서 중간중간 작은 마을들 들러서 사진 찍으려고. 그리고 이게 아마 내 마지막 픽업이 될 것 같아." 



"그러면 이 차가 제격이네. 마지막 여행에 좋은 거 끌고 가야지." 







소형 세단으로 예약했던 차량은 그렇게 준중형 SUV로 바뀌었고, 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서 내비게이션에 한 작은 마을을 목적지로 설정한 뒤에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이른 저녁부터 시작되는 이벤트였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그는 조금 떨어져 있던 작은 마을들을 먼저 들렀다 가고자 했다. 이전 여행 때 갔었던 곳들만큼이나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던 이 장소에 오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화창한 날씨에 고요한 분위기 만으로도 이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그였다.



마을 초입에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던 호텔이 인상 깊어 사진을 찍고 있던 중에 한 노인이 건물에서 나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알고 보니 이 호텔의 주인이었고, 이곳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촬영 장소였다는 것 또한 그의 설명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촬영 당시에는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파란색으로 덧칠을 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이 외에도 그가 우연히 발견해 찾아갔었던 몇몇 장소들은 유명 영화 혹은 드라마의 로케이션으로 종종 쓰였었는데, 확실히 이런 작은 마을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사람들의 호기심 한 부분을 자극하기 충분해 보였기에 어느 정도의 수요가 있다는 말에 납득이 가기도 했다.







남자는 다시 차에 올라타 이전에 친구들이 추천해 주었던 마을로 향했다. 당시에 따로 일정이 있어서 같이 못 왔던 장소였는데, 상대적으로 처음 방문했던 곳보다는 큰 평수를 가지고 있던 마을이었지만 주택들이 더 많았을 뿐 중심지 만을 놓고 봤을 때는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이때부터 맑았던 날씨에 조금씩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계속 지나면서 조금만 건드려도 빗방울을 왕창 쏟아부을 것만 같은 그런 모양새를 점점 드리웠다. 



며칠 전부터 그래왔지만 바람 또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찬 기운을 품고 있었다. 혹시 몰라 챙겨 왔던 경량 패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차로 돌아와 군대에서 입던 대로 그는 패딩 바깥에 바람막이를 하나 더 걸치고서 다시 마을을 돌아다녔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라고 들었지만 이날만큼은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대형 트럭들과는 반대로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 적은 인원들마저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곧바로 식당이나 술집, 혹은 카페로 들어가기 일쑤였기에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일찍 핸들을 돌렸다.







두어 곳의 다른 마을들을 더 거치고 왔음에도 계산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던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앨버타 주의 날씨답게 흐렸던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쾌청한 날씨가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찍 도착한 것이 마냥 나쁘지만도 않았던 게, 계획할 때부터 우려했던 주차 문제를 덕분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행사장 근처 공원에 무료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한쪽 구석에 놓인 공원관리차량들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까지는 2시간 정도가 남아있었고, 그 시간 동안 남자는 근처 마트에서 간식거리와 물을 사 와 운전석에 앉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의 양 옆과 다른 주차 칸들은 점점 채워져 갔고, 행사 시작시간에 가까워졌을 때쯤 남자는 때가 됐다 싶어 짐을 챙겨 사람들을 따라 열기구들이 펼쳐질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5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고 해서 곧장 열기구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큰 착각이었다. 풍선이 펴지는 시간은 7시부터였고, 그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남은 2시간을 추가로 더 이곳에서 때워야만 했다. 울먹울먹 거렸던 날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비를 쏟기 시작했고, 남자는 급한 대로 바로 옆 큰 나무 밑으로 몸을 피했다. 앞에 쭉 놓여 있던 푸드트럭 음식들로 저녁을 때우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던 탓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그는 빗줄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행사장 한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석양이 거의 다 질 때 즈음, 잔디밭 앞에 쳐져있던 노란색 라인이 끊어지면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단숨에 열기구 주변으로 달려들었다. 빛이 하늘에 머물고 있을 때 들여보내지 않았던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그였지만 비가 그쳤다는 것을 위안 삼아 사람틀 틈에 섞여 각양각색 부풀어 올라있던 캐릭터들을 프레임에 담아나갔다. 







주변은 금세 발 디딜 곳을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개인의 경험에 의거한 추측이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에 더더욱 기구의 고열 근처로 모여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족들끼리 모여 기념사진을 찍거나 전문가와 함께 바스켓에 올라 타 화염을 사출해 보는 흔치 않은 경험들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9시에 가까워졌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발을 돌렸다.




그는 다음 날 새벽에 열기구들이 하늘에 띄워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정확히 말하면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한 것이지만 말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스마트폰으로 가까운 패스트푸드 점을 검색했다. 때를 놓친 저녁을 챙겨 먹기 위함이었다. 몇 시간 뒤 이른 새벽에 다시 움직여야 했기에 간단히 배를 채우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온 남자는 뒷좌석 시트를 모두 눕혀 담요를 깔고, 새벽 4시에 알람을 설정한 뒤에 바로 눈을 붙였다. 근 10년 만에 혼자서 처음 해보는 차박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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