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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R Jan 16. 2022

세 번째 흉관

한 청년의 마지막 가는 길

*본 글에서 나오는 이름의 머릿글자는 임의로 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흉관은 흉막강(폐와 흉벽 사이의 공간)에 물, 피, 공기 등이 찰 때 배액을 위해 삽입하는 관이다.

흉부외과 전공의 1년차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술기이고, 우스갯소리로 '흉부외과 의사는 흉관으로 시작해서 흉관으로 끝난다'고 하기도 하는 기본적이자 필수적인 술기이다.


응급실 당직을 하게 되면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 뿐 아니라 흉부외과가 아닌 다른 과에 입원중인 환자들의 흉관 삽입이나 제거도 담당하게 된다. 응급실 환자들 중에서 흉관만 넣으면 되는 환자들은 전공의 입장에서는 처치가 간단한 편이지만 그 중 긴장성기흉은 폐 바깥의 공기 때문에 폐와 심장이 밀리면서 심정지가 올 수 있는 아주 응급한 질환으로 긴장성기흉이 의심되면 흉관 삽입 전에 주사바늘이라도 늑간에 꽂아놓아야 한다.

특히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기흉이 생기면 긴장성기흉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흉관을 넣어주어야 한다.

긴장성기흉으로 인한 심정지에서는 아무리 심폐소생술을 해도 긴장성기흉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발순환이 잘 회복되지 않는데, 반대로 말하면 긴장성기흉이 해결되면 심장이 돌아온다는 얘기가 된다.

1년차 초반에 응급실에서 긴장성기흉이라는 콜을 받고 바로 급히 내려가는 중에 응급실 소생실에 도착하자마자 내 눈 앞에서 환자가 심정지가 발생했다.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는 와중에 빨리 옆구리를 소독하고 급하게 흉관을 넣었다.

흉막을 뚫자마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1 cycle만에 바로 자발순환이 회복되었다. 소생실에 있는 모두가 '휴'하고 한숨을 돌리게 되었고 나는 흉관을 고정하고 소독과 드레싱을 해주는데 이럴 때가 소위 '흉부외과 뽕'을 맞는 순간이구나 싶었다.


처음 ㅈㅎ이에게 흉관을 넣은 건 응급실에서였다. 골육종으로 이전에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었고 이후 종양내과 외래 진료를 왔다가 찍은 흉부 X-ray에서 오른쪽 폐가 기흉이 생겨 완전히 꺼져 있는 것이 발견되어 응급실로 내원한 것이다.

젊은 남자(10대 중후반~20대)에서는 특별한 이유 없는 원발성 기흉이 가장 흔하긴 하지만 종양내과 환자인 ㅈㅎ이는 폐가 꺼져 있는 상태에서도 폐실질 안에 확연한 음영이 보여서 골육종 전이에 의한 이차성 기흉이 의심되었다.

보호자이신 어머니께서 왜 기흉이 발생한 건지, 항암치료를 받고 그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오늘 외래에 내원한 건데 혹시 골육종 전이가 진행한 것은 아닌지 물어보셨다. 이전 가슴 X ray보다 폐 안쪽의 음영이 증가해보였지만 폐가 꺼져 있는 상태라서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기도 했고,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암이 진행한 것 같다는 비보를 전하기 어려워서 일단 흉관을 넣어 폐를 펴고 난 다음에 CT로 확인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흉관을 넣었다.

늑간은 신경이 많아 감각이 예민한 공간이라 (국소마취를 하고 흉관을 삽입하긴 하지만) 당연히 흉관 삽입 시에 통증이 있고 흉관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계속 불편하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 젊은 남자에게 원발성 기흉이 흔하기 때문에 젊은 남자환자에게 흉관을 삽입하는 일이 흔한데, 흉관을 넣으려고 자세를 잡으면 항상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아파요?' 다.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다 큰 남자애들이 이렇게 물어보면 귀여울 때도 있다.) 국소마취를 해줄거긴 한데 아프긴 아프다고 그러니까 재발 안하려면 담배를 피지 말라고 얘기해주곤 한다. (흡연을 하게 되면 원발성 기흉 재발이 훨씬 증가한다.)

ㅈㅎ이는 의젓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픈 건 무서운 모양이었다. 다행히 흉관삽입은 금방 끝났고 X ray에서 흉관이 잘 들어가 있고 폐가 잘 펴진 것을 확인하고는 워낙 늘상 있는 일이기에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몇 주 뒤 종양내과 병동에서 흉관삽입 의뢰가 왔다. 종양내과 병동 치료실에 도착해서 흉관삽입 준비를 하려고 환자를 확인하니 보호자분이 날 알아보셨다. '응급실에서 흉관 넣어주셨던 선생님이시죠?'

사실 환자 얼굴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보호자분을 보니 기억이 났다. 아 그 환자구나.

그날 그렇게 흉관삽입을 하고 종양내과 병동에 입원을 해서 항암치료와 기흉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쪽 폐에 기흉이 생긴 것이다. 반대쪽 폐에도 골육종 전이가 진행된 모양이다.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예후가 좋지 않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흉관을 삽입하고 X ray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 역시나 금방 잊어버리고 일을 하고 지냈다.


몇 주 뒤 다시 종양내과 병동에서 급한 흉관삽입이라는 연락이 왔다. 환자가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산화탄소가 차면서 의식이 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갔더니 ㅈㅎ이었다.

보호자분이 의식이 처진 ㅈㅎ이의 손을 꼭 붙잡고 계셨다. 처음 흉관을 삽입했던 오른쪽 폐는 암이 완전히 진행하여 정상 폐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기능을 하지 못했는데, 두 번째 흉관을 넣었던 왼쪽 폐가 기흉이 호전되어 전날 흉관을 제거했었다가 바로 다음날 다시 기흉이 재발한 것이다. 혼자 남은 왼쪽 폐가 꺼지자 호흡이 안되어 의식까지 처진 것이다.

전일 흉관을 제거했었으니 그 자리는 아직 아물지 않았을거라 그 자리에 바로 피부를 벌려 다시 흉관을 삽입했다. 피부를 벌리자마자 바람 소리가 나면서 흉관을 넣으니 서서히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환자는 다행히도 손을 꼭 붙잡고 계시는 어머니를 금방 알아보았다. 눈 앞에서 자식의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대체 어땠을까.

흉관 삽입 부위를 정리해주고 병동을 떠나는데 마음이 참 씁쓸했다. 나중에 결국 환자는 흉관을 가지고 집으로 퇴원했다고 들었다. 아마 그 흉관을 가진 채로 세상을 떠났겠지.

부디 가족들이랑 좋은 마지막 시간 보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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