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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D R Jan 24. 2022

ㄷㅈ이

소아 환자의 첫 죽음

*본 글에서 나오는 이름의 머릿글자는 임의로 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선천성 심장병은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그 중 기능성단심실 (Functional single ventricle)은 심장이 양심실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경우의 아주 많은 구조적 진단들을 기능적으로 하나로 묶은 진단명이다. (사람의 정상 심장은 2개의 심방과 2개의 심실로 양심실 구조이다.) 


ㄷㅈ이는 기능성단심실에 전폐정맥환류이상 (Total anomalous pulmonary venous connection)을 함께 가진 아기였다. 전폐정맥환류이상은 유형에 따라 태어나자마자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수술 후에도 나중에 폐정맥 폐쇄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예후가 좋지 않은 질환이다. 

ㄷㅈ이는 폐쇄성 전폐정맥환류이상은 아니었지만 (폐쇄성 전폐정맥환류이상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좋지 않다.) 기능성단심실로 생후 1개월 전에 기능성단심실의 1차 수술을 받았고 이후 산소포화도가 잘 유지되지 않아 2차 수술을 약 5개월가량 당겨서 생후 4개월에 전폐정맥환류이상 교정술과 함께 시행받았다. 

가지고 있는 질환의 중증도만큼 예상처럼 수술 후 소아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는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체외순환기를 사용하는 심장수술을 시행하면 전신염증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몸이 붓게 되는데 ㄷㅈ이 역시 초반에는 많이 부었었지만 약 일주일이 지나 기관삽관과 인공호흡기를 뗄 때쯤에는 붓기도 많이 빠지고 또랑또랑 아주 큰 눈으로 귀여움을 자랑했다. 

개인적으로 통통한 아가들을 더 좋아하는지라 ㄷㅈ이를 아주 귀여워하면서 중환자실 근무와 당직을 서곤 했다. 

ㄷㅈ이의 부모님은 ㄷㅈ이의 상태에 대해 아주 꼼꼼하게 파악하고 물어보시곤 했는데 고유량비강캐뉼라까지 떼고 병동으로 올라갈 일정이 정해지게 되어 아주 좋아하셨었다. 


그런데, 병동전동이 예정됐던 날 아침 갑자기 ㄷㅈ이의 혈액검사에서 염증수치가 0.6에서 9까지 올랐다. 심상치 않은 수치에 혈액배양검사를 포함한 균 검사들을 시행하고 더 강한 항생제 투약을 시작했다. 

병동전동은 당연히 취소되었다. 

혈액배양검사에서는 그람음성균이 자라기 시작했고 이틀에 한 번씩 배양검사를 할 때마다 계속 균이 검출되었다. 백혈구와 염증수치는 떨어지지 않고 혈소판수치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패혈증이 진행되고 있었다. 

염증수치가 계속 올라가면서 ㄷㅈ이는 숨 쉬기를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다시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매일 혈소판을 포함한 수혈을 하면서 흉수가 차 추가로 흉관삽입도 시행했다. 

약 일주일 후 혈액배양 검사에서 처음으로 균이 검출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포화도가 감소 추세라 폐혈관확장을 위해 일산화질소까지 추가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수술 후 약 3주 째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30%까지 뚝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인공호흡기 산소를 100%까지 올리고 일산화질소도 올리고 체위도 변경해보았지만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졌다. 젖산 수치가 오르고 혈압도 떨어지기 시작하는 응급상황에서 다행히 심장초음파상 심실수축력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집도의 교수님의 결정 하에 정맥-정맥 체외막산소화장치를 달기로 했다. 

성인은 대퇴동/정맥으로 체외막산소화장치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적용할 수 있는 반면, 아기들은 혈관이 너무 작아서 수술로 경부를 절개하고 내경동/정맥을 충분히 노출시킨 후 캐뉼라를 삽입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약과 인공호흡기 세팅을 최대치로 올리고나니 ㄷㅈ이의 활력징후는 그 수술 시간을 못 견딜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경정맥과 대퇴정맥을 통해 체외막산소화장치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산소포화도는 정상수치까지 올라가지 않았고, 큰 카테터가 혈관에 삽입되는 것 자체가 패혈증의 위험성이 있고 혈소판감소증으로 출혈 등의 합병증도 걱정되는 상태였다. 


이제 ㄷㅈ이는 완전히 자고 있게 되었다. 체외막산소화장치를 시작할 때 응급상황이라 전화로 ㄷㅈ이의 부모님께 설명과 동의를 받았는데 저녁 면회를 오신 부모님께서는 ㄷㅈ이의 치료 가능성을 물어보시며 만약 ㄷㅈ이를 더 아프게만 하는 치료가 된다면 그 때는 더 이상 진행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 때가 되면 얘기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ㄷㅈ이는 신장수치가 올라가고 소변량이 줄어들면서 부어 지속적혈액투석도 시작하게 되었고, 체외막산소화장치의 합병증으로 용혈(혈구가 깨지는 현상)이 진행되어 황달이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이틀만에 황달수치가 50이상으로 오르면서 ㄷㅈ이는 노란색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면회시간에 올 때마다 점점 장치가 추가되어 인공호흡기, 체외막산화기, 지속적혈액투석기, 흉관 2개에 주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ㄷㅈ이의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을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결정적으로 ㄷㅈ이의 심장초음파에서 폐정맥이 실처럼 좁아져 있었다. 전폐정맥환류이상이 진행한 것이다. 몇 차례에 걸친 부모님과 의료진의 면담 끝에 ㄷㅈ이는 체외막산소화장치를 떼기로 결정했다. 

정맥-정맥 체외막산소화장치였기 때문에 기계를 뗀다고 해서 심장이 바로 멎는 건 아니고 ㄷㅈ이가 얼마나 버텨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후 2시, 체외막산소화장치 제거수술을 시작했다. 체외막산소화장치를 멈추자마자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떨어졌고 혈압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ㄷㅈ이는 버티지 못했다. 

빨리 제거수술을 마치고 ㄷㅈ이의 부모님을 불렀다. 

중환자실로 온 지 4주만에 처음으로 ㄷㅈ이는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혈압도 맥박도 떨어지기 시작했고 ㄷㅈ이의 침대 주변에는 커튼이 쳐졌다. 

그 와중에 수술을 마친 환자가 중환자실로 나왔고 다른 환자들도 봐야했기에 ㄷㅈ이의 침대를 떴다. 

오후 4시 14분, ㄷㅈ이의 심장이 멈췄다. 

교수님께서 사망선언을 하셨다. ㄷㅈ이 부모님은 ㄷㅈ이의 옷을 사러 잠시 나가셨고 우리는 ㄷㅈ이의 주사와 관 등을 정리해주었다. 

아무것도 달리지 않은 채 혼자 오롯이 누워 있는 ㄷㅈ이를 보니 큰 눈으로 똘망똘망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눈이 워낙 커서인지 눈꺼풀이 다 닫히지 않아 조심히 닫아주었다. 

처음 겪는 소아 환자의 죽음이었다. 눈물이 났다. 잘 멈추지 않았다. 

집도의 교수님을 비롯해서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과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게 ㄷㅈ이의 마지막이 찾아왔다. 


소아중환자실 주치의 컴퓨터에 앉아 ㄷㅈ이의 사망기록과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퇴원처방을 냈다. 

의료진의 마음이 어떻든 다른 환아들 역시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기에 감정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는데 다른 환아들을 보고 있는 사이 ㄷㅈ이는 소아중환자실을 떠났다. 부모님께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마지막 인사도 못 드렸는데. 


그 날 나는 당직이었고 ㄷㅈ이가 가고 난 빈 침대는 밤새 유난히 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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