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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Nov 07. 2023

인간실수 -1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인간적인 실수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따위 성격으로는 한국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평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때문인지 서양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대단했는데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학창 시절임에도 Longman 영어 사전을 들고 다니며 영단어를 외웠고 생각나면 다시금 찾아보는 외화 중 하나를 골라 자막을 가리고 반복 시청할 정도로 그를 실현하기 위한 의욕 또한 대단했습니다.

덕분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외국어 영역만큼은 항시 3등급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으며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등학생 삼 년을 통틀어 영어 듣기 평가 문항을 틀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필요 이상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던 원어민 선생님 조슈아와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가 가능했고 성인이 되어 바리스타를 업으로 삼고 나서도 외국인 손님들은 제 담당이 될 정도였습니다.


세 달 동안 사용한 바디 워시가 샴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17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만두를 먹고 양치를 하던 중에 화장실 밖에 두고 온 휴대전화를 다시 가져오기가 귀찮아 사용하는 세정제들의 표시 사항을 읽으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차고 넘쳤던 저이기에 사실을 깨닫고 나서 조금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샴푸라는 단어는 한글로 적혀있었으니까 이 일이 마냥 영어실력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어쩐지 그 세 달 동안 겨드랑이가 조금 더 찰랑거렸었다는 이야기는 굳이 적지 않겠습니다.



2018년 저는 호주로 떠났습니다. 갈고닦은 커피 실력을 커피의 도시 멜번에서 펼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 무렵 새로 익힌 양치 방법 때문에 칫솔을 병적으로 자주 바꾸고는 했었는데 저는 호주 마트에서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무려 칫솔 한 자루에 삼 달러라는 가격을 차마 흔쾌히 지출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저렴한 칫솔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그 옆에 일 달러도 채 되지 않는 칫솔이 보였습니다. 심지어 휴대용 칫솔 케이스 안에 들어있던 그것은 세 자루가 한 세트로 묶여 결과적으로 일 달러가 채 되지 않는 가격에 세 자루의 칫솔과 칫솔 케이스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기에 저는 따지지도 않고 부리나케 챙겨 집으로 향했습니다.

취침 전 양치를 하고자 사 온 칫솔을 한 자루 챙겨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나머지 한 자루는 휴대해서 다니려고 가방에 넣어 두었고 또 나머지 한 자루는 잘 보관해 뒀더랬지요. 화장실 거울 앞에 마주 선 저는 칫솔을 꺼내려고 케이스를 열었고 그 안에는 웬일인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심히 당황스러워 나머지 것들도 열어보려고 다시 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고 말았습니다. Toothbrush 아래에 적힌 Case라는 단어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 해 그날은 손가락에 치약을 묻혀 손가락 양치를 했습니다. 혀는 네 손가락으로 박박 긁어냈고요. 나름대로 양치를 끝내고 저는 호주의 달빛을 머금은 잠자리에 누워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비참함을 외면하면서 의식을 멀리했습니다. 그날 밤은 참 많이도 길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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