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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Dec 01. 2023

하이드로-빰쁘 -2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예약 전날 밤 8시 55분.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한 포 뜯었다. 단백질 보충제를 타 먹는 셰이커에 쏟아붇고 약 봉투에 적혀 있는 대로 물을 500ml 넣었다. 셰이크 볼을 넣고 뚜껑을 닫고 흔들었다. 가루가 다 용해되었음을 확인하고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시었다. 너무 시어서 오히려 썼다. 테이블 위에는 받아온 약 두 포 중 남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포장지에는 레몬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500ml를 다 비우고 간호사 선생님의 지시대로 또 같은 양의 물을 마셨다. 셰이커를 설거지해 두고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있을 검사를 위해서라도 일찍 잠을 청하고 싶었다. 오 분이 지났을까. 뒤가 이상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뒤’ 맞다.


똥이 마려운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방귀라는 확신이 들지도 않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발사했다가는 참사가 날 것 같아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정답은 둘 다였다. 병에 걸린 것 마냥 엄청난 양을 또 오랫동안 쏟아 내었다. 휴지만으로는 뒤처리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이미 한차례 한 샤워를 다시 했다.


이불로 돌아와 누웠으나 그 정체불명의 느낌이 다시 나의 뒤를 찾았다. 화장실로 향했다. 분명 하루 종일 아침 점심을 제외하고는 먹은 것이 없는데 첫 번째와 다르지 않은 양을 쏟아 내었다. 세 번째 샤워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는데 정체불명의 느낌이 또 나의 뒤를 찾았다. 수건을 아무 데나 던지듯 두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벌거벗은 몸으로 변기에 앉아 쏟아 내었다. 변의가(변의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지만 편의 상 변의라고 적겠다.) 멎고 일어나려고 하면 다시 변의가 찾았다. 이쯤 적고 나니 내가 뭘 적고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적어 보겠다.


그렇게 변의가 멎으면 변의가 찾아오고 그 변의가 멎으면 또 변의가 나를 찾았다. 변의와 해결을 거듭할수록 몸 안에서는 변이 아닌 물에 가까운 것이 쏟아졌고 그러면 변의가 아니라 물의라고 적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내가 물의를 일으키고 그러는 사람은 아닌데…

아무튼 그날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다.

간밤에 치른 일 때문인지 하도 먹지를 않아서 그런지 허기는 물러갔다. 한 포의 약이 남아 있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약을 셰이커 안에 부었다. 그리고 물을 넣어 흔들어 녹였다. 음미하지 않고 한 번에 들이켰다. 맛은 어제와 같았다. 쓰다 하리만치 시었다. 빈 셰이커에 물 500ml를 더 채워 들이켰다.


담배를 태우러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제보다 더 빠르게 변의가 찾았다. 꺼낸 담배 한 개비를 도로 집어 넣고 화장실로 향했다. 어제와 같은 작업이 반복되었으나 나오는 내용물은 달랐다. 그야말로 맑은 물. 물이 마치 ‘빰쁘’로 쏘아 대듯 나왔다. 생각보다 괄약근의 힘은 대단했다. 밀어내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그 내구성이 걱정되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도착해서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기술을 구사했다. 하이드로-빰쁘를. 차례가 되어 간호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명하셨다. 다행히 그 뒤로 이어진 수순은 예상한 바와 같았다. 잠에 들었고 깨었다. 모든 것은 비로소 끝이 나있었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나는 회복실을 거치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내 발로 원무과까지 걸어가 수납을 했고 진단을 들었다. 문제는 들은 진단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는 것. 결국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아가서 진단을 들어야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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