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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Nov 28. 2023

하이드로-빰쁘 -1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소싯적 우덜 살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리 으르신들께서는 알파벳 P를 ‘ㅍ’이 아닌 ‘ㅃ’으로 발음하셨다. 예를 들어 파이프, 플러스, 펌프 같은 영단어들은 각각 빠이뿌, 뿌라쓰, 빰쁘 등으로 읽히고 통했다. 그야말로 충청도 식 영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는 일천구백구십팔 년도. 옆집 사는 고등학생 친척 형 덕에 또래들보다 조숙한 문화를 일찍 접한 나는 TV로 방영된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이 보니까 또 스티커를 모으니까 그저 따랐을 뿐.


만화에 별 관심이 없었음에도 서른네 살인 지금까지도 거북왕의 하이드로 펌프라는 기술 이름은 기억하고 있다. 아니다. 정확히는 기술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드로 펌프라는 이름의 ‘펌프’라는 단어가 내가 알고 있던 또 사용하고 있던 ‘빰쁘’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전편에 나는 비수면 위내시경에 대해 적었다. 위 없이는 아래도 없는 법. 따라서 오늘은 대장 내시경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위내시경이든, 대장 내시경이든 모든 시작은 썩은 계란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태초에 연신내 원룸 냉장고에는 들여온 지 네 달이 넘은 깨진 계란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라면에 넣어 섭취했다.

위내시경의 진단 결과는 모든 부분에서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하루 일곱 끼니도 너끈하지 않던 소화 능력은 여전했다. 다시 한번 적자면 애초에 하루 일곱 끼를 (처)먹는 것이 문제라고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것을 인지해 버리면 벌크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으니까 알면서도 외면하지 않았을까.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모든 문제를 썩은 계란 탓으로 돌렸다.


위를 검사해 봤으나 정상이다. 그런데 소화 능력은 여전히 떨어진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아래를 검사해 보고 싶어 할 테다. 그 누구가 설사(그 설사 아님.) 미국 대통령일지라도.


나는 연신내 주변 병원 중 대장 내시경 비용이 가장 저렴한 곳을 수소문했다. 비수면 위내시경을 받을 때 고생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는 무조건 수면으로 하리라 다짐했지만 병원에 전화를 걸었을 때 대장 내시경은 비수면이라는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예약은 다음날로 잡혔다. 예약 문의를 할 때 병원에서는 금식을 지시했다. 하루 일곱 끼를 (처)먹던 나는 아니나 다를까, 퇴근 무렵부터 밀려오는 공복감에 속이 쓰렸다. 그러나 예약 당일 몸 안에 카메라가 들어왔을 때 미처 비우지 못한 오물들을 촬영 당하고 싶지 않았음과 동시에 그 오물들로 의사 선생님의 경건한 진료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기를 쓰고 참았다.


퇴근 후 찾은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한 번 더 금식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가루가 든 두 포의 약을 건네며 집에 가서 밤 9시, 다음날 아침에 각각 한 포씩 물에 타서 복용하라고 지시하셨다. 지시 사항도 간단하겠다 허기만 잘 참고 약만 잘 먹으면 다음날 오전에 예약된 대장 내시경의 모든 과정은 내가 잠이 든 사이에 마무리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경기도 오산이었다.

예약 당일 오 분 남짓 만 참으면 되었던 위내시경과는 다르게 대장 내시경은 그날 밤 9시 약을 복용하고 나서부터가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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