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전주 여행기 (10)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있다. 여기에는 수많은 한옥 건물들 이외에도 경기전, 전주향교, 한벽당, 오목대와 이목대, 전동성당 등 오래된 건물들도 있다.
한옥마을은 당연히 수많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주된 도로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고 사람만 걷도록 되어 있다. 양옆에 고즈넉한 기와집들이 늘어선 가운데 여유를 느낄 만큼 널찍하여 걷기에 좋은 도로가 있고, 거기에 자동차들은 다니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거리다. 벽돌로 깔린 도로와 거리 장식과 길가의 나무들 모두 매우 예뻤다.
"한옥에서 자면 어떨까? 다음에 올 때는 이런 데서 한 번 자보자."
한옥마을에도 숙박시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한 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낯선 모텔에서 숙박하게 됐지만, 나중에 언젠가 다시 전주를 방문할 때는 한옥에서 숙박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 거리의 광고는 눈에 띄기는 하지만 매우 어지럽다.
한옥마을에서도 비슷하게 느낀다. 양 옆으로 즐비한 가게들이 무리하게 광고만 하지 않는다면 이 도로가 훨씬 더 예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옥마을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헷갈리는 아이스크림과 꼬치류 등 각종 길거리 음식이 넘쳐나서 야식시장을 방불케 하는 것은 아무래도 눈에 거슬리는 풍경이다.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수많은 먹거리 상점들로 인해 한옥마을의 품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상점들은,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큰 간판과 광고물을 게시하고 있다. 대체로 비슷한 크기의 작은 가게들이 너무 큰 간판과 광고시설을 달거나 내걸고 있어서, 원래 잘 지었던 건물마저 건축물로서의 품위가 손상되는 것은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간판이 건물 외관을 온통 가릴 때가 많아서 언뜻 보면 어지럽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상점이 있는 건물마다 각종 간판이 붙어 있다.
동종 업종 가게들이 난무하는, 치열하기 그지없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광고시설로 경쟁에 치중한 결과, 그리고 정부가 올바로 규제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 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과당 광고판 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지역이든 개발 규제가 있기 마련이어서 건물의 높이 등을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거리의 광고 또한 그러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 사회라고 해서 광고를 제 맘대로 하는 것은 공동으로 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광고를 시끄럽게 하면 '소리'를 규제하는 것이 당연하고, 시각적으로 불편하게 하면 '외관'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 하나의 건물 또는 하나의 거리에서 모두 비슷한 크기와 비슷한 색깔로 간판이나 광고물을 통일하기라도 하면 그 건물이나 거리는 훨씬 깨끗하고 단정해 보일 것이다. 건물이나 거리의 특색에 맞게 광고를 규제하면 그것이 오히려 광고효과를 높이게 되지 않을까. 그런 규제는 한국사회의 품격과 거리 외관의 품위를 높이는 중대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부디 관계당국이 앞으로 세부적이고 효율적인 규제를 통해 상가를 보호하면서도 건축물의 품위를 되살리려는 노력과 함께 거리를 한층 깨끗하고 품위 있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한옥마을은 온통 식당이나 카페 같은 가게와 숙박시설로 채워진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미술관과 전시관, 박물관 등도 있었다.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카페와 먹거리 음식점들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 있는 상점의 삼분의 일은 카페나 식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영업자들이 차린 가게들이 5년 이상 살아남는 것이 기적이라 할 만큼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은 과당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거리에 즐비한 수많은 비슷한 가게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들이 모두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전망은 앞으로도 어두울 듯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우리는 한옥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즐거운 표정으로 몰려다녔다. 어떤 아이들은 한복을 빌려 입고 활보했다. 어느 기와집 안에 들어가면,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기도 했다. 골목골목을 헤쳐 들어가면 어느 여염집이기도 하고 숙박시설이기도 했다.
풍남문은 전라감영 소재지인 전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며, 보물 제308로 지정되어 있다. 풍남문은 고려 공양왕 원년인 1388년 전라관찰사 최유경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의 숭례문과 비슷한 모양이다.
전주 성곽은 원래 동서남북 사방에 문이 있었으나 선조 30년 (1597) 모두 파괴되었다. 그 후 영조 10년 (1734)에 성곽과 함께 중건되어 남문을 명견루라고 불렀다. 그러나 영조 43년 (1767) 또 큰 불이 나서 남문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하여 풍남문이라고 이름 붙이고, 서문은 패서문이라 했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을 뜻하는 말로, 전주가 풍패지향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풍패는 한나라 고조 유방이 태어난 곳인데, 전주를 그곳에 비유했다. 반면 북문은 패북문이라 해서 마찬가지로 풍패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1907년 도시계획과 함께 풍남문을 제외한 성곽과 성문 전체가 철거되었다.
그것은 조선이 일본의 반식민지 상황에 이르러 벌어진 일이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의 문화재나 역사유물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예 가능하면 훼손하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그런데 그렇다 해도 그것은 전주라는 도시를 개발하면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에도 우리는 도시 및 국토 개발을 위해 수많은 문화재와 역사적 유물을 허물고 훼손하고 덮어버렸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에 집착하다 보니 역사적 유물을 존중하는 시선이 좁혀지고 가치가 전도된 탓이다.
결국 도시개발이란 그렇게 우리의 유물과 유적과 역사를 허물고 만다.
지금도 편익과 효율과 이익을 위한 각종 개발은 우리의 옛날을 지우고 역사와 유물을 자꾸만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 스스로 파괴하는 우리의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개발이 옳을까, 보존이 옳을까. 거기에 절대적 옳음이나 절대적 그름은 없을 테고, 그래서 많은 경우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옛것이 사라지는 것은 참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