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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군산-전주 여행기 (11)

by memory 최호인


풍남문을 끝으로 우리의 이틀, 실제로는 하루 반에 걸친 군산-전주 여정은 막을 내렸다.


다음날은 월요일이고 나의 친구들은 모두 출근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른 오후에 귀경길에 올랐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까지 성종은 끝내 운전대를 독차지했다. 성격 탓인가 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차 운전을 맡기지 않는 성격. 중간중간 쉬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긴 운전 시간이라서 피곤할 듯했다. 강한 책임감과 추진력. 그것이 야무지고 똑똑한 성종의 특징이다.


상국은 사뭇 조용하고 차 안에서도 자주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친구가 남 앞에서 나서지 않고, 잰 체하지 않고, 조용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했었나 새삼스레 느낀다. 그래도 학창 시절에는 곧잘 유머도 하고 떠들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아무 말 안 해도 가끔 미소를 던지면서 자기 몫을 알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그는 마음속에 많은 생각이 오가도 입에 함부로 올리지 않으면서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의 차갑지 않고 소탈한 모습은, 누구든 그에게 접근하기 편하고 정겹게 한다.


혁국은 여행 기획 및 안내자로서 가장 말을 많이 하면서 이번 여행을 이끌었다. 5년 전에 만났을 때는 잔뜩 굳은 얼굴로 술만 마시고 취한 탓에 삶이 고달픈가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인생을 상당히 달관한 넉넉한 이미지를 풍겼다. 그가 이미 사전답사를 완벽하게 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여행은 그의 친절하고 계획된 안내로 인해 대단히 안정되고 편하게 끝났다. 타인에게 아무 부담 주지 않고 길을 안내하는 그의 모습이 든든했고 매우 고마웠다.


우리 남자 넷이 이렇게 여행을 한 것은 물론 난생처음이다. 대학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졸업 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렇게 함께 여행길에 나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더욱이 나는 오랫동안 조국을 떠나 있었고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진 채 지내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랜만에 조국을 방문한 나는 그들에게 참으로 깊은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 모두 나름대로 자리 잡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 같아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했다. 아, 언제 이들과 다시 이렇게 여행할 수 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죽전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상국과 나는 전철로 향했고, 성종과 혁국은 굳은 악수 후에 떠나갔다. 2018년 8월 중순, 기록적인 더위가 한반도를 덮쳤다는 그 여름에 군산과 전주를 잇는 이틀간의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날 오후 서울로 돌아온 나는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저녁 식사를 위해 강남역 앞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가서 순두부찌개를 사 먹었다. 이 단조로운 음식을 먹자니, 지난밤 먹었던 남도한상의 풍요로움이 자꾸만 떠올랐다. 거의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듯한 순두부찌개에 반찬이라고는 단무지 세 쪽과 김치 한 종지뿐이다. 남도 한상에 나왔던 그 많은 반찬들 가운데 두세 개만 앞에 있어도 나의 식사는 훨씬 맛있고 풍성할 것 같았다. (이렇게 질 낮은 음식을 제공한 강남역 앞 음식점은 2023년 가을에 보니 이미 문을 닫았다.)




<추신>


이 여행기는 지난 2018년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갔던 여행을 그해 10월 무렵 되새겨 적은 것이다. 그 후 5년 반이나 흘렀다. 지금 와서 그때 적은 글을 다시 꺼내어 읽고 되짚어 정리하면서 느꼈다. 친구들도 나도 그새 많이 늙었구나!


나는 2019년 여름에도 서울을 방문했으며 그때는 다른 친구 그룹과 함께 진도를 방문했다. 서울에서 살던 한 친구가 진도로 낙향하겠다고 아무 연고도 없는 진도에다 덜컥 집을 산 후, 처음으로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면서 벌어진 여행이었다. 그 바람에 아직 정리도 안 되었고 거의 아무 세간살이도 없는 진도의 낯선 집에서 우리는 이틀간 자면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해 가을에도 나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진도 여행기를 적었다.


그해 여름 서울 방문 이후 겨울로 접어들면서 드디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코로나19는 미국 뉴욕에서 가장 먼저 또 가장 심각하게 확산되었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급기야 미국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미 전역에 전면적인 봉쇄 정책 실시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 주유소, 슈퍼마켓 등 필수 사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과 관공서가 문을 닫아야 했고 모든 미국인들은 자기 집에 머물도록 강제한 것이다.


처음에 우리는 한두 주만 지나면 코로나19의 파급력이 가라앉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그 강제명령은 무려 두 달이나 지속됐으며, 코로나19는 더 오랫동안 우리를 위협하고 괴롭혔다. 그 공포의 시간이 수년이나 흐른 후에 상황은 ‘코로나19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 전과 후의 사회는 어딘가 달랐다.


한국을 방문하기 원했던 나는 2023년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이번에는 두 달간의 여행 일정으로 한국에 온 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났고, 앞에 적은 대로 혁국 등과 고창과 정읍을 여행할 수 있었다. 또한 두 번째 달에는 나에게 낯선 부산으로 혼자 가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부산을 여행했으며, 그로써 [뚜벅이를 위한 부산 한 달 살기] (https://brunch.co.kr/magazine/1monthinbusan)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 후기를 브런치스토리에 올리면서 나는 감히 ‘전라북도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였다. 사실 겨우 두 차례에 걸친 짧은 여정으로 군산과 전주, 고창과 정읍을 보고 나서 전라북도를 망라하는 것처럼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여행기록이다. 더욱이 내가 방문했던 곳들도 더욱 풍부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그래도 나는 미국에 살면서 제한된 조건에서나마 한국 방문에서 부산광역시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방보다 전라북도에 여행을 집중한 셈이다. 아마도 친구 혁국의 여행계획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나는 전라북도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원래 호남에 아무 연고도 없지만 그가 계획하고 안내한 여행에 매우 만족한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할 때도 나는 분명히 전라북도 어딘가를 여행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다시 여행 후기를 기록하고 싶다. 그리하여 그 스토리를 이 브런치스토리 매거진 또는 디지털북에 포함하거나 별도의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 그것이 내가 전라북도와 글을 통해서 맺은 인연을 위한 작은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내 여행 기록은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 사실 정보를 간단하게나마 전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다. 그런 정보는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쉽게 또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 나의 기록은 기본적으로 여행지를 가서 보면서 느끼고 떠오른 나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으로서 느끼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관한 서술과 평가를 포함한다. 그 결과, 한국에 관한 나의 지식과 정보는 부정확할 수 있기도 하거니와 나의 서술방법이나 시각 또한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의 그것과 차이가 많을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내 기록의 특징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영역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그간 이처럼 부족한 나의 여행 기록을 굳이 찾아서 읽어준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끝)



알림.

위에 밝힌 대로 2019년 여름에 나는 2박 3일 일정으로 진도를 여행했다. 그해 가을 적은 여행기를 곧바로 정리하여 별도의 매거진으로 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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