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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y 05. 2024

미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반이스라엘'을 통한 '반전'이 목표

5월 초의 감미로운 공기가 감도는 날 오후, 나는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간 계속 가봐야지 하면서 미뤄둔 숙제 같았다. 언론에서는 연일 미 대학가 시위를 보도하면서 특히 뉴욕시의 아이비리그 대학인 컬럼비아대학이 자주 언급되고 있었다.


5월 1일 노동자의 날 아침에는 지난밤에 있었던 뉴욕시경의 컬럼비아대학 해밀튼홀 시위대 진압 뉴스가 뉴욕타임스지 머리기사로 보도되었다. 컬럼비아대학의 시위대는 4월 30일 아침에 대학행정건물인 해밀튼홀을 점거했고, 대학 측 요청으로 경찰은 그날 밤에 2층 창문을 뚫고 전격 진입했다. 학생들의 해밀튼홀 점거는 물론 갑자기 돌출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이뤄진 경찰의 시위대 진압과 100여 명 체포, 그리고 그들에 대한 대학측의 학사징계 문제와 연관된 것이다. 또한, 시위대는 대학측이 친이스라엘 투자를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려는 의도에서 해밀튼홀을 점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18일 뉴욕시경이 전격적으로 시위학생들을 체포한 사건은 결국 컬럼비아대학의 시위를 평정시킨 것이 아니라 시위를 더욱 투쟁적으로 확산시킨 꼴이다.


이러한 시위는 컬럼비아대학뿐 아니라, 이미 한국 언론에도 자세히 소개된 것처럼 미 대학가 전역으로 확산된 상태다. 대학들의 친팔레스타인(Pro-Palestine) 시위대가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쉬운 것도 아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서에서 시작됐으며, 대학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에서는 자신들이 다니는 대학이 이스라엘과 친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divest)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 시위대의 텐트촌 전경. 그 앞에 이 대학에 있는 22개 도서관 중 최대 규모인 버틀러도서관이 보인다.


그들의 더욱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집단학살’(genocide)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지는 이에 관한 지속적인 심층분석을 통해 대학 시위대들이 반유대주의(anti-semtism)가 아니라 매우 극단적이고 호전적이며 인종차별적인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대하는 ‘반이스라엘’을 부르짖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과도한 폭력이 이스라엘과 미국 등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고, 반전,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등을 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항하여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된 친이스라엘 시위대까지 출현하여 양측의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학들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에는 유대인 학생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시위 중에도 여전히 전통적 유태인 식품인 '코셔'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들의 의도는 명백히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반이스라엘에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롭게 공존할 것을 원하고 있다. 


오늘날 미 대학가 학생들의 시위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1968년 반전 시위의 전통에서 이어진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반전, 반인종주의, 반제국주의로 이어지고 있으며, 평등한 인권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3일 오후, 나는 기어이 시간을 만들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컬럼비아대학이 있는 맨해튼 브로드웨이 116가 역으로 갔다. 시위대가 이미 경찰에 의해 진압됐다 해도 그 남은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정문은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있다. 그러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고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만 보면 자못 살벌한 분위기다.


그래도 정문 앞에 있는 사설 경호업체 직원인 듯한 청년인 조섭에게 물어보았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냐고. 나는 그저 캠퍼스 사진만 찍고 싶다고 말했다. 조셉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시위대는 이미 모두 철수됐습니다. 컬럼비아 학생이나 직원이 아니면 캠퍼스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출입문들을 닫고 경찰이 지키고 있는 거죠?”

“4월 18일부터 이런 상태입니다.”


정문 출입구 왼쪽에는 대학행정건물인 해밀튼홀이 있고, 그 앞에 중앙광장이 있으며, 그곳에 시위대의 텐트촌이 있었다.


“나는 단지 시위대가 있었던 광장 사진만 찍고 싶습니다만,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는군요.”

“캠퍼스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문이 암스테르담 애비뉴 쪽에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시면 여기보다 캠퍼스 안이 더 잘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세한 것은 나도 모릅니다.”


조셉은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경호안전 요원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젊은이다. 암스테르담 애비뉴에 있는 출입문은 내가 서 있던 정문에서 캠퍼스를 가로질러 직진하면 만나는 출입구이다. 그러나 캠퍼스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캠퍼스 외부를 돌아서 가야 한다고 조셉은 말했다.


컬럼비아대학의 메인캠퍼스는 남북으로 보면 114 스트릿에서 120 스트릿까지 걸쳐 있다. 나는 결국 브로드웨이를 따라 120 스트릿까지 돌아가서 암스테르담애브뉴 116 스트릿에 도착했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도 대학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데 모든 출입구마다 경찰과 경호직원들이 지키고 서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신분증을 가진 관계직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아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많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통제 라인을 준수하면서 다니고 있었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그렇게 따뜻하지 않은 가운데도 대학생들이라 그런지 짧은 소매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기말고사까지 끝이 난 상태였는지 일부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퇴실하고 있었다. 기숙사 퇴실은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이뤄진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큰 카트에 기숙사에 있었던 자신들의 짐을 모두 싣고 거리로 나와서 가족이 차를 가지고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경찰은 분명한 위협이 없는 한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다. 긴급한 상황이 없으므로, 경찰들은 여기저기에서 옹기종기 모여 서서 잡담을 하고 있었으며, 혼자 지키는 사설 경호직원들은 내내 밖에서 추위에 떨어선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위용도 당당한 경찰에 비해 분명히 대단히 낮은 처우를 받는 그들의 처량한 신세가 안타깝게 보일 정도다.


컬럼비아대학 학생들과 직원들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에도 경찰이 단단히 지키고 있었으며, 출입자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오가는 학생들을 보았다. 학교 주변에, 특히 출입구마다 바리케이드가 있지만, 분위기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다. 사흘 전 발생한 시위대의 해밀튼홀 점거와 경찰의 진압 등 시위대의 사진을 구하고 싶었던 나는 마침 대학에서 나오던 여학생 두 명에게 말을 붙였다.


그중 알렉산드리아라는 학생은 로스앤젤레스 출생이며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다행히 그녀는 나에게 줄 만한 사진들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가자의 민간인들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이 명백히 잘못"이라고 말하고, 심리적으로는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동조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된 내용에 못 미치지만, 그녀가 나에게 전한 사진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4월 21일 버틀러도서관 앞 광장에 있는 텐트촌 모습과 4월 30일 시위대의 해밀튼홀 점거를 경찰이 진압한 후의 모습이다.


해밀튼홀 앞 모습. 벽에 걸린 'HIND'S HALL'에서 HIND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족과 함께 사망한 팔레스타인 6세 아이의 이름이다.


이와 아울러, 3일 오후에 내가 직접 본 컬럼비아대학 주변의 모습들도 소개한다.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어 있고, 경찰과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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