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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Jul 13. 2024

그의 죽음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편지 - 친구 HS에게

[친구 HS로부터 오랜만에 편지를 받았다. 지난 수개월간 내가 왜 잠수 타고 있냐고 궁금해하면서 보낸 메시지다. 며칠 전에 친구 자녀 결혼식이 있어서 여러 친구들이 모인 김에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봄에는 여수, 순천, 고흥과 홍도, 흑산도, 목포를 여행했다. 여전히 부지런한 일상을 즐기고 틈틈이 여행하면서 온전한 은퇴생활을 하는 그녀가 부럽다.]


1.


이곳은 요즘 무척 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한낮에 햇빛 찬란한 거리로 나가면 눈이 너무 부셔서…


2019년 그 무더웠던 여름에 진도-목포-광주를 여행했던 기억이 날 때도 있단다. 눈부신 햇빛 광선들 속에서 그 격렬한 여름, 진도의 흙과 풀과 땀과 바다 냄새가 살짝 풍기는 듯도 하다. (한낮 최고 기온이 37도를 넘었던 그해 8월 초 우리가 여행 갔던 날! 그 폭서에 선뜻 나를 데리고 먼 곳까지 여행했던 여러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거리를 걸을 때면 습기를 잔뜩 먹은 뜨거운 공기가 대기에 가득하고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치솟는다는 느낌이 든다. 유명한 식당 앞에서 손을 벌리는 홈리스는 그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더워도 그늘에 있으면 참을 만하니까. 나는 그들이 겨울에 어디로 가나 궁금해한다.


가만히 보면 이곳 더위는 아무래도 서울에 비해서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이나 일본의 무더위는 이곳에 비해 너무 습하고 더 찐득거리는 듯하다.


나는 아주 단조롭고 조용히 지내고 있단다. 놀라울 만큼 ‘고독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쇼펜하우어 철학이 크게 유행하는 듯한데, 그 바람에 그를 조금 공부하고 보니 나도 어느새 그의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의 철학에 빗대어 내 삶을 겨우 새롭게 이해하고 정당화한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쇼펜하우어 정도는 ‘부르주아 철학’이라고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갔잖니. 당대 철학계에서 헤겔의 유명세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힘을 겨루고자 했던 불쌍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젊었던 시절, 전체주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는 난세의 영웅, 철학을 집대성했다는 철학자, 헤겔만 지나치게 위대한 인물로 숭앙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헤겔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고 쇼펜하우어에 친근감을 느끼고 있으니... 이런 것을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격하게 표현해서, 사상의 변절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개인주의자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


지난 2월에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죽었어.


한국에 갈 때마다 가장 자주 만나고 함께 여행도 하고 늘 진지하게 대화도 하면서 언제나 나에게 잘 대해주었던 친구인데, 간암으로 결국…


작년 9월에 내가 서울에 갔을 때 하필 그는 병원에 있었어.

내가 서울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 그는 이미 악화된 건강 상황으로 인해 무려 한 달간이나 입원했지. 그래서 내가 서울에 한 달이나 있는 동안 내내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부산으로 가기 한 주 전인가에야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강남역 고시텔 작은 방에서 초가을 밤 추위에 떨고 있는 나에게 새 이불과 베개를 사서 갖다 주었고, 비 내리던 날 내가 부산에 갈 때는 서울역으로 배웅해 주었어. 10월 말에는 그가 부산으로 와서 우리는 2박 3일간 함께 걸을 수 있었지. 그와 함께 걸었던 내용은 나의 부산 여행기에 모두 적혀 있어.


부산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올 때, 나는 조금이라도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었다. 서울에서 출국하기 전 나흘간 그가 살고 있던 하남시에 머물고자 했고, 그가 미리 예약해 둔 미사리역 앞 숙소에 자리를 잡았지. 그가 사는 하남은 2019년 여름에도 가보았지만, 그때는 그의 자동차만 타고 다녀서 잘 몰랐는데... 완전히 높은 건물들만 있는 신도시였어. 지하철 5호선인가 서는 곳이었는데, 건물들이 거의 모두 똑같아 보여서, 겨우 하룻밤이었지만 전철역에서 나와서 숙소를 찾아가는 데 잠시 애먹기도 했었지.




부산에서 올라와서 내가 수서역에 도착할 때 그가 마중 나왔고 그때부터 우리는 계속 함께 있었어. 그는 아침 8시면 커피를 들고 내 숙소로 왔지. 이틑날부터 마지막 사흘간, 내가 하루는 병원에 갔다가 교회 친구들을 만나고, 또 하루는 대학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렇게 시내로 나갔던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그와 함께 있었다. 그와 함께, 그가 매일 운동 삼아 걷고 있다는, 아름답고 기다란 한강둑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혹시 그때 그가 미리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 맑은 가을날, 파란 하늘과 드넓은 한강을 바라보면서 나는 말했지.

"여기 경치 끝내주는구나. 다음에 내가 다시 올 때 여기 또 걷자."



그렇게 우리는 그 길을 다시 걷기로 약속했어. 나는 한국에 올 때마다 그와 함께 많은 둘레길을 함께 걸을 계획을 했지. 오랜 기간 신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이미 천주교 성지 순례길을 거의 다 돌았고, 해파랑길 등 코리아 둘레길도 아마 절반 정도는 다닌 여행의 ‘도사’였거든. 그와 함께 다니면 나는 아무 계획도 세울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았단다. 그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내가 미국으로 떠나고 겨우 달포 만인 지난 12월 말부터 그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는 거야. 원래 간 이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암세포가 주변으로 전이되어서 건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간 이식조차 할 수 없게 되었지. 그렇게 훌륭한 의료진을 가진 병원에서 그의 건강은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결국 그는 올해 2월 초에 다시 기약 없이 입원 치료하게 되었지. 그렇게 입원하바로 전에 나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이랬단다.


“간 이식 및 림프절 전이 절제 수술로 1개월 이상 너의 글을 보지 못한다. 너의 글을 다시 보기를 희망하며 수술 잘 받을게.


그의 메시지가 왔을 때, 하필 나는 맨해튼에서 일하던 중이었고, 그날 저녁 매우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전화를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지. 바로 보낸 나의 텍스트는 그에 의해 읽혀지지 않았다.


"벌써 병원에 가 있는 것인지... 부디 수술 잘 마치고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때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뚜벅이를 위한 부산 한 달 살기]를 거의 매일 연재하느라고 온통 거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어. 그가 입원한 후에도 나는 그가 다시 퇴원하기를 기다리면서 태연히 글을 쓰고 있었지. 과거에도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가 당연히 치료 후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가던 중 돌연히 3월 초에 그의 부고가 날아왔다.

(그와 내가 있던 카톡방에 그의 아내로부터!)


3.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딘가로 뚝 떨어지는 느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깊은 고통에 휩싸였다.


사는 게 이렇게 무상할 수가 있나...

이 고단한 삶을 어떻게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나...

갑자기 삶이 종말로 치달을 수 있는데,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그가 없는 서울, 한국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다시 한국에 가면 그와 함께 걷기로 예상하고 있었던 수많은 길들은 어떡하나...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고, 그와 여행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깊은 슬픔이 나를 압도하고 있다.

그에게 뭔가 추모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지금껏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를 '잊고' 있었다.


한 달 전에야 겨우, 마음을 맴도는 그리움을 지울 수 없어서 문득 떠오른 시 한 수만 적을 수 있었지. 그에 관해 뭔가 써야 한다는, 쓰고 싶다는 생각을 수개월 동안 했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황이야. 나는 아무 변화도 없이 그대로라... 슬픔이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이따금 멍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가,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긴 한 건가’라고 자문하기도 해. 모든 일이 꿈만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불쑥, "오래 기다렸지?" 하면서 그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지난가을 그가 부산에 와서 함께 걸을 때, 2019년 여름에 비해 그가 많이 허약해졌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가끔 숨이 차다고 하면서 나에게 좀 쉬자고 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한 달이나 되는 긴 치료를 받고 나왔고, 특히 그의 말대로 그가 먹는 "약들이 너무 세서" 약 기운 때문에 힘든가 보다, 생각했단다. 항암치료가 무척 힘들다는 것은 그것을 십여 차례나 겪은 그를 통해 익히 들은 바 있고, 그런 치료를 받고 나올 때마다 처음에는 거의 '반죽음' 상태로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지난 수개월간, 뭔가 하던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음과는 전혀 다른 주제의 글을 쓰다가도 문득문득 깊은 고독과 슬픔에 젖어들기도 하고...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을 쓰느라 그를 잊고 있는 나를 다시 발견하기도 한단다.


그를 어떻게 추모할 수 있을까, 또 그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에 관해 수개월간 생각하다 말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그러다가 겨우 한 주일 전에야 그와의 추억에 관해서 뭔가 쓸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머릿속에만 있어. 만약 가능하다면 오는 가을이나 되어서 쓰기 시작할 수 있으려나.

또는 머릿속에 있다가 그냥 머릿속에서 사장되려나…


아직 모르겠다. 내 손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서 어디론가 귀착되겠지.


너의 편지를 받고 나서...

비로소 처음으로 그의 '죽음'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몰랐거든.

이 슬픔이 언제 가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락해 줘서 고맙다.

잘 지내.



추신. 나는 아직도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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