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늦은 밤 강남역 1번 출구 풍경
자정이 거의 다 되어
강남역 지하상가 복도를 걷는 내 앞에
양키스 모자 쓴 초라한 할아버지가
흰머리 긁적거리며 비틀거린다.
그 옆으로 아슬아슬 짧은 치마 입은
피부가 하얀 젊은 아가씨가 스쳐 지나간다.
꼭 잡은 검은 핸드백을 앞뒤로 휘저으며
긴 머리 날리는 그녀도 비틀거린다.
1번 출구 높다란 계단 초입에
불콰한 얼굴로 앉아 있는 청년은
손에 든 전화기만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흘깃 보니 전화번호를 누를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더라.
여자친구에게 전화할까 말까.
용서해 달라고 할까 말까.
용서하겠다고 할까 말까.
그냥 사랑한다고 할까 말까.
시월의 밤은 깊어가고
무거운 가랑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테헤란로를 성급히 지나는 차바퀴에
빗물 튀는 소리 요란한데
계단에 앉아 있는 청년은
언제 집으로 돌아갈까.
하지 않던 술톡도 지껄이고
마음속으로 슬픈 가요도 흥얼거리면서
허겁지겁 차가운 밤비를 뚫고
외로운 고시텔 작은 방으로 걷는 나는 또
언제 집으로 돌아갈까.
(2024년 10월 22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