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1.
어느덧 서울에서 돌아온 지 보름이 더 지났다.
10월 초에는 뉴욕보다 서울이 더 따뜻했는데, 10월 말에 뉴욕으로 돌아오니까 서울보다 뉴욕이 더 따뜻했다. 뉴욕으로 돌아오자 서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단풍이 잔뜩 들어 있었다. 뉴욕 외곽에 있는 이 동네에서 아주 조금만 나가면 풍부한 단풍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늘이 아주 파랗던 날, 한국여행의 여운을 덜어내기 위해 또 서울에서 보지 못한 단풍 풍경을 보기 위해 나는 뉴저지 북부에 있는 호수로 가보았다. (뉴욕시에서 워싱턴브리지만 건너면 뉴저지 북동부 지역이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바람은 잔잔했고 호수는 깨끗하고 투명한 거울처럼 빛났다.
호수 주변으로 단풍이 아주 예쁘게 들어서 나는 그윽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한동안 사로잡혔다. 호숫가의 울긋불긋한 풍경, 투명하고도 푸른 물 위에 반사되는 빛나는 햇빛과 노란 빛줄기, 너무나 조용하고 잔잔한 호수, 인공적인 것은 거의 없는 자연,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물과 나무 등이 눈에 차례로 들어왔다.
2.
아무리 좋은 곳에 간다고 해도 여행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것은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전과 여행 후에 나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그것은 거의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여행을 떠올릴 때 여행지에서 벌어질 일만 기대하고 들떠서는 안 된다. 여행은 일시적인 것이고, 그 전후에 놓인 나의 일상은 지속적인 것이다. 여행이 그 일상을 파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3.
언제나 그렇지만, 한국에 갈 때보다 돌아온 후가 더 힘들다.
이번에도 뉴욕으로 돌아와서 시차를 극복하는 데만 한 주일은 걸렸다.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는 두 주일 정도 걸린 듯하다.
소위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여름 기간에 서울과 뉴욕의 시간 차이는 13시간이다. 서울이 뉴욕보다 13시간 빠르다는 말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 11월 첫 주말에 서머타임이 종료됐다. 그래서 지금은 14시간 차이가 난다. 지구가 공처럼 둥그렇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데도, 이런 시차는 종종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비행기를 타고 잠시 자리를 옮긴 것 같은데 낮밤이 바뀌고 내 몸은 영 다른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갈 때보다 뉴욕으로 돌아와서 더 힘들다고 하는 것은, 시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갈 때나 올 때나 시차에 따른 몸의 적응 과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여행의 전후에 몸과 마음 상태의 차이가 발생하는 까닭은 여행의 시작과 끝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첫째, 한국에 가기 전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에 차 있지만, 돌아올 때는 그런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서울에 가기 전에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기대감이 증가한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뜨고, 여기저기 갈 곳들이 떠오르는며, 뉴욕의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기대감도 큰 몫을 한다.
둘째, 한국에서 지속적인 긴 여행으로 인해 몸이 지친 상황에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도 한 달간이나 되었고, 그 기간에 거의 매일 어딘가 돌아다니느라 몸이 회복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 나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지난 수십 년간 몸무게에 별로 변화가 없는데, 이번 여행이 끝난 후에는 몸무게가 약간 줄기까지 했다. 그만큼 서울에서 많이 걸어 다녔고 몸은 힘들었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뉴욕의 일상으로 나를 초대했다.
익숙하고 조용하고 지루한 뉴욕의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아직도 한국 여행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나는 약간 쓸쓸하다.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 지방 여행을 갈 때의 들뜬 마음, 서울의 수많은 풍경, 지하철과 끼끗한 역들, 강남역으로 오가는 거리 풍경과 지하상가, 작지만 어느새 정이 든 숙소 등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러나 애써 접는다.
나는 다시 뉴욕 일상을 보듬는다. 잠시 잊었던 일상을 되찾는다.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나를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안착시키고,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