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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단 May 08. 2023

사진의 또 다른 이름, 치유

사리 소이니넨 Sari Soininen


마음의 병


소리 없이 찾아와 서서히 삶을 잠식해 가는 마음의 병. 하지만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데다 마땅한 예방법도 없고, 치료를 위한 접근마저 어렵기에 이상을 느끼고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최근 이러한 병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기에 사회적 인식 역시 굉장히 부정적인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 인류에게 가장 큰 부담을 줄 질환으로 ‘우울증’을 꼽기도 했으니, 마음의 병은 그 어떤 역병보다 더 인류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Dimension #7 (출처: 1854.photography)



하지만 이러한 질병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들도 있었다. 뭉크와 고흐, 버지니아 울프 등 평생을 고통 속에 괴로워하면서도 창작에의 열망을 놓지 않았던 이들. 우리는 이들의 작품들을 통해 불행했던 삶의 궤적을 그저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은 이러한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좋은 방책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술이나 음악을 통한 정신질환의 치료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또한 글쓰기를 통해 증상을 극복한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 역시도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겪은 저자의 치료 기록을 담은 책이었다. 솔직하고 대담한 고백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산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이처럼 예술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마음의 폭풍우를 가장 잘 표현해 내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자, 누군가에겐 구원을 선사하는 초월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출처: transferencemag.com)




치유의 경험


영국 브리스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핀란드 출신 포토그래퍼 사리 소이니넨 Sari Soininen. 그녀는 조금 독특한 계기로 사진계에 입문하게 된다. 12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담는 게 취미였던 어린 그녀는 이후 철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쏠렸던 맘을 뒤로하고,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사진학을 전공하게 된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접하게 된 LSD라는 마약은 그녀의 청년기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는다. 호기심이 넘치고 미적 영감에 대한 갈망이 높았던 그녀였기에 마약이 주는 강한 환각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위험한 약물에 과도하게 중독되고 말았고,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인 시절을 약물 부작용으로 낭비하고 만다. 손을 떼기로 결심했을 땐 이미 너무 늦은 상황. 감당할 수 정신적 후유증 때문에 매일이 고통의 나날이 된 그녀는 결국 사진을 포기할 지경에 이른다. 



Dimension #4 (출처: 1854.photography)



하지만 사리는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자화상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가장 친숙했던 매체인 사진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돈을 위해서도,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다시 카메라를 잡았던 것이다. LSD 복용을 중단한 후에도 꽤 오랜 기간 환각과 환청에 시달려야만 했던 그녀는 그 시간을 마치 지옥의 악마들과 대면하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한다. 거리에서 정체 모를 괴물을 마주하고,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오해해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으니까. 




Choe Andrea Welgemoed x Hunger Magazine (출처: 1854.photography)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게 된 그녀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진에 집중하기로 다짐한다. 이런 흔치 않은 경험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창작에 대한 욕구가 다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한없이 평범한 세상도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정말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물론 그녀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이를 이루어냈지만 말이다.  




(출처: transferencemag.com)




이미지로 맺힌 고통의 기억


사진을 통해 가장 힘든 시간을 무사히 견뎌낸 Sari Soininen. 비록 그 영감의 시작은 어두운 순간들로부터 출발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주변 환경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녀는 철학과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더욱 촘촘하게 현실을 바라보려 노력했고,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Simone Roche x HM x Sunday Times (출처: 1854.photography)



스스로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봤던 경험을 했던 사리는 그런 기억들을 토대로 이와 유사한 이미지들을 사진에 담아내려 했다. 또한 풍경과 피사체에서 발견한 즉각적인 인상을 포착해 관객으로부터 다채로운 감상을 유도하려 했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마음속에 머무르던 트라우마를 물리치는 것, 그녀는 이미지로 자신의 고통을 배출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것이다. 




(출처: ninunina.com)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그녀는 마침내 되찾은 자신의 자리를 더욱 소중히 지켜내기 위해 더욱 힘을 쏟는다. 자신의 병을 명확히 인지하고, 불안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며,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임과 동시에 또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과 함께 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또한 증상 속에서 하루하루 위태로운 삶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실상은 굉장히 충격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꺼려하겠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이런 현실이 세상에 솔직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병과 관련된 끔찍한 이야기들 대신 그들이 겪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정직하게 내보이는 것이 프로젝트의 요점이라 설명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작품에 정직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철학이 잘 반영된 기획이다.




(출처: ninunina.com)




나는 세상이 상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라 여겼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얻고야 만 사리 소이니넨. 그녀의 작품은 삶에 있어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들의 무사한 삶을 바라고, 그들과 함께하길 간절히 원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말이다.





필자: 주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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