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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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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Jun 28. 2024

비 온 뒤, 맑음이라

내 마음에게 

어제저녁 산책에 나섰다가 한두 방울 빗방울이 예사롭지 않아 평소 작은 호수를  세 바퀴 돌던 것을 멈추고 한 바퀴만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들어 맨발 산책에 재미가 들려서 흙을 밟는 기분을 막 즐기려던 차였는데 흩날리는 빗줄기가 애꿎게 느껴졌다. 우산만 있었다면 나는 더 신나게 산책을 했을 텐데, 속엣말을 구시렁거리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비 오는 날의 산책을 좋아하기에 우산을 갖고 나와서 새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해 볼 마음도 먹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얄궂게도 혼자일 때는 그런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두 번이나 건너야 하잖아, 오늘 비가 오니 내일도 비가 오면 그때는 신나게 다시 걸어볼 테야 등등 귀찮은 마음에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의미 없는 기대로 마음을 돌려 버렸다. 


인생을 선으로 표현한다면 나선형의 곡선이지 않을까? 비슷한 일을 반복하지만 매번 다른 의미를 발견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이지 않을까?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듯하지만 과거와 똑같지만은 않은 그런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사는 것이 일상이지 않았던가?


어제는 왜 그랬을까? 우중산책을 좋아하지만 되돌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메말라있었다. 직선으로만 살고 싶어, 날카롭게, 똑떨어지게 살고 싶어, 되돌아 제자리로 와서 혼자이고 싶지 않아... 뭐 그런 내밀한 마음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쉬운 마음에 창밖을 내다보니 빗줄기는 더 거세졌고, 노을빛이 완전히 가시기 전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참 예쁘다."


오늘 아침, 유독 푹 잘 잔 개운함에 커튼을 젖히면서 슬며시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주룩주룩 비가 와주기를!' 우산이 없어서 아쉬웠던 어제의 마음을 보상받고 싶었다.

커튼을 완전히 젖히고 보니, 비는 고사하고 쾌청하게 맑은 하늘이었다. 꿀떡 하나를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는 어린애의 천연덕스러운 맑음이었다. 창문을 열어보미 6월부터 시작된 강렬한 더위가 어젯저녁 비로 조금은 식은 듯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아침에 걷자. 저녁부터 뿌린 비가 아직 땅을 적시고 있을 테니, 오늘의 햇살이 땅이 품은 수분을 모두 앗아가기 전에! 이제라도 걷자!'


혹시 모를 강렬한 햇살에 적셔진 땅보다 먼저 내 피부가 공격받을까 봐 선크림을 두어 번 바르고 창이 넓은 바캉스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무장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다행히 땅은 비의 흔적을 잘 품고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땅을 밟으며 이제라도 이 땅을 밟음에 어제저녁부터 괜스레 뾰로통해 있던  마음이 살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걸으며 다시금 생각하며 나를 타일렀다. 

햇살이 땅에 뿌려진 비의 흔적을 모두 지우기 전에 되돌아오길 잘했어.

인생은 나선형이잖니?

직선의 곧은길을 걷는 듯하지만 돌고 돌아 아주 조금씩 상승하는 거야.

가던 길에서 되돌아가야 할 때도 있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천천히 가자.


땅의 촉촉한 기운 덕분에 내 마음을 다독이며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살다 보면 사는 것이 참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 시간들을 곱씹어 보면 그럴만한 주역들이 있었다. 

황교수가 그랬고, 정교수도 비등했다. 이박사는 또 어떻고? 최박사는 또 말할 것도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뿐일까? 때로는 정겹던 친구나 이웃들도, 교회에서 만난 이집사, 황집사도 그러그러했다. 


사는 것에 짜증이 나고 내 맘 같지 않은 엇박자에 신음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고집불통에 뺀질거리며 이기적이었던' 바로 내가 아닐까 싶다.

기회만 나면 밴댕이 소갈머리가 내 속에서 올라와서 나를 뒤집어 놓는다.


저녁 산책을 나가서 뾰로통해서 돌아온 건 

비 오는 날씨 탓도 애꿎은 우산 탓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변화할 생각이 없는 내 마음 탓이다.


마음은 날마다 이야기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뻔질나게 온갖 핑계를 대며 고자질을 해댄다.

그 수백, 수천, 수만 개의 마음들을 다독이며 사느라, 사는 것이 가볍지 않은 것이다.


비 온 뒤, 맑아진 내 마음에게 당부한다.

때로는 네 마음을 거슬러 용납해 줄래?

그래도 괜찮아, 다른 방법이 있어! 힘차게 새로운 생각을 떠올려 주는 건 어떠니?


그러면 나는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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