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인 Jun 25. 2024

하루의 의미

한강의 해 질 녘


그까짓, 고작인 하루 같아서

하루 동안 별 일 없이 

빈둥거려도 그저 지나가는 것이 하루다.


또 하루 동안 높은 산을 오를 만큼 

예상치 못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긴 시간이 하루이기도 하다.


빈둥거리며 보내는 하루든

빠듯하게 보내는 하루든

하루를 사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싶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일어나는 나의 24시간은

고고한 숨결을 태워 작품을 만드는 장인의 손길처럼 

집중하고 단련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루를 온전히 산다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하루에 두 세끼의 식사를 위해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는 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정해 놓은 루틴을 행하 일

내게 주어진 과업이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지만 

한 해만 돌려봐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쳇바퀴를 도는 일

그저 그런 일상에 생경한 시선을 쪼이며 의미를 발견하느라 

나의 하루를 위해서는 늘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듯 하루는 고단하지만 

한 주는 그보다 빠르고 한 달은 더 빠르다.

오늘 하루는 별 일 없이 지난 듯한데

그런 오늘들을 살아냈더니

지난 시절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내온 일은 위대하다 싶어

나를 토닥이게 된다.


하나, 둘, 셋 낳은 아이들이 크는 걸 보면

거룩한 생명의 전이에 더욱 놀라기도 한다.

나는 느려지고 아이들은 빨라지고 있다.

내 눈은 가물해져 바늘에 실을 꿸 때는 아이들을 불러대고

아이 손에 넘어간 바늘에 실이 꽂히는 건 순간이면 충분하다. 


나는 그저 하루를 살아냈는데

그 일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었고

내 모든 생명을 타자에게 넘겨주는 일이었다.


큰 의미 없는 하루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활활 태워 나를 위해 사는 듯 하지만

실상은 생명력을 세상에 뿌리는 것이 곧 삶이었다.


별 것 아닌 하루

대단하지 않은 하루

때로는 지루함을 이겨낸 하루

그 하루들이 켜켜이 쌓여갈 때

나는 나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에게 향한 시선을 우리로 향하게 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방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