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인 Jun 28. 2024

T인 아들과 엄마가 물건과 작별할 때

7년 7개월 나의 발이 되어주던 차가 어느 날 갑자기 변속기 장애로 깜빡이더니 도로 한 중앙에 서는 일이 생겼다. 잠시 불안정하더니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동을 거니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작동을 한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 평소에 신뢰하고 가던 자동차 정비소를 방문해서 정비를 받았다. 결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해서 이번에는 르노삼성정비소를 찾아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점검을 받았다. 점검비용만 지불하고, 역시나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만 받고 돌아왔다. 노련해 보이는 정비사는 나에게 "차가 오래됐으니 그러려니 하며 좀 둔감하게 생각하며 사용해도 된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자동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최대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동하며 아이들 통학과 나의 출퇴근에 일익을 담당하는 10년 된 나의 자동차는 내 생활의 일부였다. 


그런 자동차가 갑자기 잔고장의 신호탄을 보내자, 나는 단 번에 냉정을 찾아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불과 3일 만에 아이들과 자동차 대리점들을 방문해 보고, 마음에 드는 신차를 계약하고 중고차 매매가 가능한 사이트에 사진을 올려 매매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7년 7개월을 함께한 자동차를 별 애정 없이 얼른 보낼 궁리를 하는 것 같아서 남편에게 한마디를 꺼냈다.

"여보, 사람들이 중고차 파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민도 하고 서운하다고도 하던데 나는 왜 아무런 감정이 없죠?"

"물건은 보내면 더 좋은 게 올텐데요. 뭘~"하며 그저그런 답을 했다.


엄마 아빠 대화를 듣던 아홉 살 된 막내아들이 자기 이야기로 거들기 시작했다.

"엄마, 내 친구 강준이는 집에 있던 정수기를 엄마 피아노 학원으로 옮겨 놓는다고 해서 하루 종일 속상해서 울었대요. 그런데, 강준이 이야기를 듣는데 '도대체! 왜? 정수기가 옮겨가는 게 울 이유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하며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는 속마음을 큰 눈동자를 굴리며 온몸으로 표현했다.


막내아들의 말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래 물건이 뭐라고? 잘 썼으면 그만이고, 때가 되면 못쓰는 날도 올 수 있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


다음 날, 최고가를 제안한 중고차 딜러가 방문해서 차의 상태를 샅샅이 살펴보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사모님~ 차를 정말 잘 관리하셨네요. 다른 데서도 견적 받으셨죠? 솔직히 얼마로 팔고 싶으세요?"


그래, 나는 나에게 속한 물건들도 소중히 다룬다. 원래의 모습을 가급적 오래 유지하도록 깔끔하게 관리하면서. 하지만 물건과 작별할 때는 아쉬움이 전혀 없다. 그저 효용이 끝나면 보내는 게 정답이라 생각한다. 이런 나를 닮았나? 막내도 물건과 작별하며 감정이 발동하는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나 보다. 물건과 작별할 때는 쿨~하게! 


매거진의 이전글 300미터 미끄럼틀이 있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