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재미란 이런 거란다.

고통도 이기는 몰입

by 자유인

나는 꽤나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생한 증거는 조금만 재미있어도 엄청 잘 웃는 데 있다.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나는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가 참 재미있고 위트 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남편은 29살에 나와 연애를 하기 전까지 제대로 연애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머를 갖춘 남자가 연애를 못했다? 그럴 리 없다. 나는 이 지점에서 작은 재미도 풍성하게 즐기는 내 성격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내가 전에 몰랐던 재미를 알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 남편과 결혼 전까지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한 적이 없던 사람이다. 특히, 몸개그에는 웃음 대신 눈살을 찌푸렸다. 몸개그를 하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 후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남편에게 채널 고정권을 주고 보니, 보기만 하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 재미를 내가 너무 늦게 알았다 싶었다. 남편이 가르쳐 준 재미는 큰 웃음, 배가 당기는 웃음이었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즐겨온 진짜 재미는 바로 몰입이다. 가장 즐겼던 재미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몰입의 즐거움"을 처음 발견했을 때도 제목부터가 나의 재미를 이해받는 것 같아서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몰입의 경험을 처음 하게 된 것은 학창 시절에 수학을 좋아했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암기과목은 귀찮고 지겨웠지만 수학만은 공식을 유도해가며 문제를 풀 때의 즐거움과 성취감, 짜릿함이 있었다. 하루 종일 수학만 공부해도 지겹지가 않았다. 물론, 공부는 이렇게 편식과 폭식의 패턴으로 하면 안 된다. 어쨌거나 수학은 몰입을 가르쳐 준 고마운 과목이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을 할 때의 즐거움은 내 인생의 묘약 같기도 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 묘약을 일상과 버무리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특별히 공부하는 것에 집중되어있다. 공부를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다. 이 골치 아픈 일에 몰입하게 되면 잔잔한 평온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고백건대, 엄청난 학문적 기여나 '유레카!'를 외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이 잔잔한 즐거움이 매력적이라서 지속하고, 반복하게 된다. 때로는 복잡한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도, 불쾌하고 속상한 감정들도 이 몰입을 통해 씻겨 나가는 경험을 한다. 그러니 몰입이 주는 즐거움은 내 생활의 귀한 명약이다.


요즘 내가 찾은 새로운 몰입의 대상은 운동이다. 사실 나는 몸을 쓰는 데는 소질이 참 없는 사람이다. 몇 달 전부터 건강을 생각해서 하루 일과 중 한두 시간 요가매트를 깔아 두고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낯설고 어색한 동작들도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근력이 붙는 것을 느낀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나면 아프지만, 통증을 뛰어넘어 반복해서 쓰면 그 부위의 근육은 더 강해진다.


고통이 오면 멈추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삶은 수난의 연속이다. 이런 삶이 재미있으려면 고통을 견디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수난으로 점철된 삶이 나를 점령할 수도 있다. 삶에 치이며 살 것인가? 삶을 정복하며 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참 많다.


내가 좋아하는 몰입은 고통들을 뛰어넘는 과정과 함께한다. 몰입은 고통을 지나고 괴로움을 견디게 한다. 즐거움, 기쁨, 행복 등 내가 향유하고 싶은 긍정의 정서들은 몰입을 통해 부정의 정서를 이기는 시간을 통과할 때 더 크고 강력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배꼽 빠지게 웃는 것도 좋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재미는 고통을 견디는 몰입의 과정에서 오는 잔잔한 평온과 기쁨이다.

keyword
이전 05화시간은 너의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