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너의 편이야
젊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도 충분해
나의 전공분야는 노인복지이고, 노년기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주로 한다. 활기차고 준비된 노인들에 관해 연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병약한 노인들에 관한 연구를 한다. 내 직업은 교수이고 대학에서 20대의 청년들을 만난다.
내 속에는 어떤 모순이 늘 존재한다.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노년기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강단에서는 대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또 그들을 더욱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년과 청년의 삶, 어느 한쪽에 집중하는 것은 나의 일곱 살 난 막내아들이 좋아하는 변신 로봇 마냥 의식상의 변신이 필요한 일이다. 때마다 생각을 고쳐먹고, 마음의 자세를 달리해야 한다. 이런 변신 기술을 구사하며 산다는 건 내 생활의 작은 묘미이자 스릴이기도 하다.
젊음과 나이 듦의 중요한 차이는 시간을 셈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시간의 조망에 있어, 노인들은 마지막 시간을 어림잡으며 남은 시간을 따져본다. 반대로 청년들은 손쉽게 살아온 날을 꼽는다. 굳이 끝을 염두에 두고 역산까지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시간 조망의 방식은 인간의 뇌가 수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노년이 되면 살아온 날이 버거워서라도 남은 날을 헤아리는 게 쉽고, 청년은 앞날이 버겁고 깜깜해서라도 살아온 날을 꼽는 게 수월하기 때문이다.
노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실의 시간보다 기억 속의 시간이 훨씬 아름답게 그려진다. 적당히 망각하고 나면 의미 발견이 쉽고, 의미의 진가가 삶에 녹여지면 심지어 고통조차 '좋았던 기억 저장소'에 자리 잡는다. 일례로 "키울 때는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아이 낳고 키울 때가 가장 좋았다"는 노인들의 고백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래서 기억은 고통과 희열이 만나는 좌표이고, 불행과 행복이 교감하는 모순 덩이다.
기억은 어떤 이에게는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생을 살아내는 지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아직 이런 연륜을 갖지 못했지만 연구를 통해 만난 평범한 노인들은 제각각의 비범함을 갖고 있었다. 오랜 세월 속에 풍파도 있었을 테지만 풍파를 견뎌낸 자들이 소유한 연륜의 비범함은 뽐내지 않아도 빛이 난다.
한편, 나이 든 사람들은 청년들을 두고 앞날이 창창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사전 상의 의미로 창창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바다, 하늘, 나무, 숲과 같이 푸른 것들이 제대로 진한 푸름을 뽐낼 때 쓰는 말이다. 또, 창창하다는 말에는 앞날이 멀고 아득하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 나이 든 이들이 젊은이들에게 앞날이 창창하다, 앞날이 구만리라고 하는 것은 희망과 긍정에 더하여 부러움까지 꽉 채워 표현한 것이다.
정작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아득하게 남은 시간을 긍정과 낙관의 의미로만 다가가지는 않는다. 앞날이 아득하기에 불안과 두려움, 대혼란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청춘들에게 짐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들이 있지만 무엇을 선택해야 오류를 최소화할지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그러니 아슬아슬한 곡예 넘기 같은 청년기를 보내고 나면 번민과 불확실로 가득했던 젊음의 때를 손사래를 치며 보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만족이 찾아오면 안주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자극을 만나도 여러 이유로 이내 자극에도 둔감해진다. 그렇게 고인 물 마냥 제자리에 머물게 되면, 번민의 짐은 덜었지만 가능성이라는 희망도 사라져 간다.
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가슴에 희망과 꿈을 채워도 늦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무지로나 실수로나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더라도 가던 길을 되돌아 다른 길을 가도 될 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막다른 길들을 만나겠지만 걸어온 만큼 인생 근력이 붙어 힘은 더해질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아직도 못다 준 행운들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텅 비어 까마득한 시간은 번민으로 찰 때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압도되지는 않길 바란다. 번민은 인생의 고귀한 땔감이다. 번민하고 또 번민해도 괜찮다. 번민의 열기가 불안과 두려움, 깜깜하고 답답한 마음을 모두 태워버릴 수 있다.
젊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도 시간은 당신의 편이 되어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그러니 더 당당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