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해도 명예훼손입니까?

by 이동민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 사유


법률 용어 중에서 아주 불필요하게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상의 언어와 완전하게 분리된 단어를 사용하면 일상의 개념과 혼동(混同)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너무 동떨어져 있다면 법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조각(阻却)'이라는 법률용어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일상생활의 조각과는 전혀 다르게 '없애다'라는 뜻이다.*


조금만 더 어려운 개념을 설명해보자면, 우리 형법은 '해서는 안 될 행위'를 규정해놓았다. 여기에 규정된 행위는 법률용어로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에 해당한다'라고 하여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한다. 형법전에 금지된 행위를 하면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위법한 행위로 추정된다. 위법하다는 것은 우리의 통념과 일치하는 그것으로 행위에 대한 법률상의 반가치적 평가에 해당한다. 더 쉬운 말로 하자면 형법전에서 하지 말라고 한 행위를 하면 기본적으로 비난받을만한 행동으로 본다는 뜻이다.


위법성이 굳이 추정된다는 말을 쓴 이유는 기본적으로 추정되는 위법성이 특별한 사유에 의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법한 행위를 적법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또는 그 근거)을 법학에서는 위법성 조각(사유)이라고 한다. 어떤 특정한 조건을 갖추면 비난받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할 수 없는 행위가 된다는 뜻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정당방위가 있는데, 사람을 때리는 행위는 비난받을 행위이지만 자신의 신체를 지키기 위해서 정당한 방위행위를 했다면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정당방위는 대부분의 범죄에 적용되는 위법성 조각 사유임에 반하여, 명예훼손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다. 형법 제310조에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보호하여 언론의 자유나 자유로운 사상이 피어날 가능성까지 짓밟아서는 안된다는 헌법의 요청에 따른 규정이다.


명예훼손에만 적용되는 이 특수한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첫째, 적시된 사실이 허위의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허위의 사실을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허위의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고 하여 자유로운 사상이 발현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는 적법의 영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또한 자유로운 사상과 그 표현을 허용하는 이유는 공익에 부합하기 위함이지, 사익에만 봉사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니 위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사실을 적시한 행위가 일정 부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하더라도 적법한 것이 된다.


적시된 사실이 허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기준으로 삼는다. 즉, 내용의 중요한 부분이 진실과 일치한다면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언 전체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행위'로 평가받지는 않는다.


두 번째 조건인 사실의 적시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적시된 사실이 반드시 공적 영역에 대한 것일 필요는 없고 사적 영역에 관한 것이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었다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법률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에 봉사함이 유일한 동기로 제한되지도 않는다. 즉, 사실 적시의 주된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되고, 사적인 동기가 모두 배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어디까지를 공공의 이익'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첨예한 다툼이 있다. 예를 들어 10명의 이익이라면 공공의 이익인가? 100명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공공의 이익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숫자가 다수이더라도, 또는 그들이 주류의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단체의 이익에만 봉사하기 위한 발언은 공공의 이익으로 보아야 할까? 이런 문제는 철학적인 접근 없이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철학적인 접근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우리 대법원은 어떤 경우에 공공의 이익으로 보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대법원 2022. 2. 11. 선고 2021도10827 판결

피해자와 피고인은 같은 종중에 속한 종중원이다. 피해자는 종중 회장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피고인은 피해자의 회장 출마에 반대하면서 "피해자는 남의 재산을 탈취한 사기꾼이다. 사기꾼은 내려오라."라고 발언하였고, 피해자는 피고인의 이 발언을 문제 삼아 고소하였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죄의 전과가 있으니 남의 재산을 탈취한 사기꾼이라는 발언은 객관적 사실에 합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피해자의 종친회 회장으로서의 적격 여부는 종친회 구성원들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판단(무죄)하였다.



대법원 2021. 8. 26. 선고 2021도6416 판결

피해자 A, B, 피고인 C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피해자 A는 회사에서 전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자, 피고인 C는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자이다. A와 B는 근무 중에 마찰이 있었고, 인사담당자 C는 A와 B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하였다. 피고인 C는 그 과정에서 인사위원회 소집 사실 및 A와 B의 징계사유까지 기재된 문서를 회사 방재실, 기계실, 관리사무실에 게시하였다. 이에 A는 징계 절차 및 징계사유까지 공개할 필요가 없음에도 공개했다는 것을 이유로 인사담당자 C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대법원은 회사의 징계 절차가 공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징계과정 전체가 낱낱이 공개되어도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 징계사유가 기재되어 있으므로 단순히 '절차에 관한 사항'만으로 볼 수 없다는 점,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징계의 확정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점 등을 토대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9도13404 판결

피고인은 택시 협동조합의 조합원인데, 조합 임시총회에 참석하는 조합원들에게 "이거 보아라. A가 B 사장이랑 같이 회삿돈을 다 해 먹었다."라고 발언하면서 A의 횡령 사실이 유죄로 판결된 판결서 사본을 배포하였다.

대법원은 A가 수개월에 걸쳐 11억 원을 횡령한 사실은 조합원 전체의 이익과 관심에 관한 것으로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 해 먹었다'라는 속된 표현이 들어가 있더라고 하더라도 비방할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도8780 판결

피해자는 대안학교의 교장이고, 피고인은 같은 학교에서 영어 교과를 담당하는 자이다. 피고인은 교장을 속이고 자신이 운영하는 영어 교육 콘텐츠를 학생들에게 이용하게 함으로써 청구할 필요가 없는 이용료를 학생들이 부담하게 만들었다. 이에 피해자인 교장과 피고인인 교사는 이용료 부당 청구 문제로 대립하게 되었고, 피고인은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신과에 다닌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피해자와 다툼을 벌이던 중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한 것으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유죄).





* 네이버 국어 대사전 기준으로 어깨번호 4번의 '방해하거나 물리침'이라는 뜻과 한자가 동일하다. 하지만 방해하다는 뜻은 아니고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없애다'의 뜻에 훨씬 가깝다.


** 형법 제307조 제1항은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죄를 같은 조 제2항은 허위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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