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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스 Jul 05. 2022

아이는 왜 쓰레기를 잔뜩 짊어지고 왔을까

나와 너무도 다른, 아이의 맥시멀 라이프를 이해하기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 친구의 손에 쓰레기로 추정되는 종이 뭉치가 가득한 가방이 들려있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이 친구의 엄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얘는 왜 쓰레기를 다 짊어지고 왔어?”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쓰레기로 가득 찬 가방이 바로 내가 오늘 아침 아이의 손에 들려준 내 에코백이라는 걸. 불안한 마음에 스쿨버스 안을 들여다보니, 또 다른 쓰레기로 가득 찬 쇼핑백 두 개를 가슴에 안고 있던 아이가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다. 혼자서 감당 못할 양의 짐을 잔뜩 싸들고 와 친구의 손까지 빌려야만 했던 나의 아이가.


학년도의 마지막 날이라 짐이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을 했지만, 적당히 버릴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챙겨 올 줄 알았던 내 기대는 아이의 웃음과 함께 파사삭 무너져 내렸다. 그럼 그렇지, 내가 우리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구나, 되뇌며 말이다. 나 참, 저 아이를 어쩔꼬.


어설프게나마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나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집에 사는 열 살짜리 꼬마다. 갖고 싶은 물건 리스트가 항상 꽉 차 있고, 어딘가를 가면 그곳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나 하다못해 팸플릿이라도 들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물욕의 끝판왕.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이부자리에 다 모아 놓아 어쩔 수 없이 머리맡에 아이 잡동사니 전용 커다란 정리 선반을 배치하게 만들었던 타고난 맥시멀 라이프의 화신.


종이뭉치와 수업자료, 학용품, 책이 뒤섞인 짐을 한 데 쏟아놓으니 어이가 없다. 책과 수업자료 때문에 짐이 많으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들과 주고받은 쪽지와 낙서, 그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책상 밑에 쇼핑백을 하나 갖다 두고 모든 쪽지와 그림들을 다 쑤셔 넣어 보관해왔다는 말에 기가 찬다. 쓸데없는 것들이면 바로바로 버릴 것이지, 1년 동안이나 끌어안고 있다가 집에까지 끌고 온 아이를 이해할래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짐 더미를 보며 짜증을 숨길 수 없었던 나와 달리, 아이는 그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눈을 반짝였다.

동그랗게 뭉쳐진 노트 한 장을 펼치며 “엄마, 이 쪽지는 일본으로 이사 간 친구 D가 이메일 주소를 써준 거야.”라고 자랑하기도 하고, “앗! 내가 좋아하는 G가 준 쪽지네! 엄마 한 번 읽어봐.”라며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종알종알해준다. 내 눈엔 그저 쓰레기로만 보였던 종이쪽지들이지만, 아이에게는 그것들이 즐거웠던 학교 생활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가끔은 지루하거나 속상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조각들이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나도 버리기 어려워 필요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간직하는 물건들이 있다.

내가 우리 아이 정도 나이의 꼬마였을 무렵, 나는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했다. 차로 꼬박 5시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계셔서 자주 뵐 수 없었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과 모든 일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나에게 주시는 모든 물건들을 보물상자에 넣어 간직했다. 직접 만들어주신 작은 손가방부터,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어주신 만원 짜리 지폐 한 장 까지도. 그 물건들을 가끔 꺼내어 만지작거리다 보면 외할머니가 곁에 계시는 것 같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달래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더 많이 생겨나면서부터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라도 찾아뵐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외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 그러다 십 년쯤 전인가, 엄마와 언니가 외할머니댁에 다니러 간다는 말을 듣고 오래간만에 따라나섰던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여전히 나의 외할머니셨지만, 많이 작아지시고 약해 보이셨다. 조금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외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외할머니는 직접 뜨개질한 베이지색 조끼 하나를 꺼내 보이시며 “조금 작을 것 같긴 한데, 마음에 들면 이 조끼 입을래?” 물으셨다. 그리고 그 조끼를 받아 들던 그날이 외할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조끼를 다시 마주한 것은 예정에 없이 해외로 잠시 이주를 하게 되어 필요 없는 물건을 한창 정리하던 때였다. 외할머니의 말씀처럼 그 조끼는 사이즈가 조금 작기도 했고 투박하기도 해서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서랍 속에 간직되고 있던 차였다. ‘필요’를 기준으로 한다면 바로 버려져야 했던 물건이지만, 나는 차마 그 조끼를 버리지 못하고 해외까지 짊어지고 왔다. 그 조끼에는 외할머니를 참 좋아했던 열 살 즈음의 나와, 외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함이 마음에 걸렸던 서른 즈음의 나, 그리고 한껏 약해진 손으로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하던 외할머니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외할머니의 조끼를 떠올리니, 그저 쓰레기 뭉치 같기만 했던 아이의 종이 더미들이 달리 보였다. 어른인 엄마의 눈에는 하찮아보일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일 수도 있겠지, 싶어진 것이다. 오히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많은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기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조금 너저분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이면 어떠랴. 깔끔히 정돈된 환경보다 소중한 순간들을 아끼고 되새기는 쪽을 선택한 아이를 이해해보려 한다. 물론 앞으로도 아이의 물건 때문에 내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할 테고 이를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아이의 물건들을 미워하지는 않으려 노력해볼 것이다. 그것은 ‘다름’ 일뿐이지 ‘틀림’은 아니니까. 나와 같은 듯 다른 내 아이와 함께하며 오늘 또 하나 더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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