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러시아어?

외국어공부 유목민의 러시아어 배우기

by 카이로스엘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나요?”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네, 영어는 그래도 어느 정도 하고 일본어는 아주 조금 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는 진짜 쥐 눈물만큼 알아요.”


영어는 대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이고 일본어는 남편 직장 때문에 일본에서 4년 정도 살다 와서 생존에 필요한 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일본에 있을 때 나이 지긋하셨던 선생님께 몇 달 정도 1:1로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으나 사용하지 않다 보니 안타깝게도 거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독일어는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관심이 생겨 6개월 정도 남산에 있는 독일문화원에서 배운 적이 있다. 그래서 아주 조금의 기본 상식이 있는 정도랄까.


쓰다 보니 이거저거 건드려 본(?) 외국어가 꽤 되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얼마 전부터는 러시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려 독학으로. 학원에 다니면 빨리 늘겠지만 주변에 러시아어 학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 인터넷 어학 강의로 유명한 곳을 수소문해서 1년간 러시아어 수강 신청을 했다.


어떤 외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영상 강의를 보고 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독학이 아닌 셈인가? 그래도 이건 독학의 범주에 넣어야 맞을 것 같다. 어찌 됐건 대면으로 만나는 ‘선생님’이 안 계시고 수업 시간도 내 마음대로 조절하니 말이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거기에서 보내 준 교재로 공부를 한다. 과연 동영상만 보고 외국어 학습이(그것도 전혀 생소한) 가능할까 염려를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강의가 쉽고 재미있어서 진도가 예상보다 잘 나가고 있다.



나는 십 년 이상 대학교에서만 한국어 강의를 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아랍권 국가와 러시아, 러시아 주변 국가(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왔다.


성인 학습자들은 한국어 실력이 초급이라고 해도 영어 등으로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이 나이 어린 꼬맹이 학습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려면 학교에 계시는 이중 언어 강사님들의 통역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학생들을 만나는 과정에서의 무언가 때문에(아마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해 느껴지는 답답함 때문인 것 같다.) 내 마음 깊숙이 잠자고 있던, 외국어 공부라는 변덕쟁이 사자의 코털이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생뚱맞게 러시아어라니! 평소에 러시아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러시아를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도 그다지 없던 내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될 날이 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러시아어를 배우게 되면서 러시아라는 나라에 가 보고 싶은 마음도 함께 생겼으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다.

metro-g9495cf57c_1920.jpg 러시아의 지하철역은 예술적인 건축물 같다. 러시아에 가면 지하철을 꼭 타 보고 싶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은 첫째, ‘발음’이다. 러시아어에서는 ‘p’가 혀를 굴리는 발음인데 도대체 이놈의 혀가 굴러갈 생각을 안 한다.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이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는 러시아어의 경우 모든 명사에 ‘성별’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어도 성별이 있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왜 유럽어들의 명사에는 성별이 있는 것일까? 그것도 남성, 여성뿐만 아니라 중성까지 있어 더 복잡하다.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건 어떤 명사는 남성이고, 어떤 명사는 여성, 어떤 명사는 중성이라고 누가, 무슨 기준으로 정했는지다.


왜 ‘사전’은 남성이고 ‘책’은 여성일까? 왜 ‘주스’는 남성인데 ‘우유’는 중성일까? 주스는 그 맛이 새콤달콤한 것이 내 기준에서는 여성이라고 해야 더 걸맞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쨌든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하니까 진도는 꽤 잘 나간다. 요 며칠 방학이라고 게으름을 부렸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러시아어 문법책과 단어책을 펼쳐 봐야겠다.


러시아어만큼은 중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다시 한 번 주문 같은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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