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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17. 2022

체육 샘의 애제자

아들아, 엄마 안 닮아 다행이야

  "엄마, 나 1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풋살 동아리 들어오래."

  "풋살 동아리? 너 큐브 동아리 들어가고 싶다고 했잖아."

  "어. 그런데 선생님이 나보고 꼭 풋살 동아리 들어오라고 하셨어. 대회도 나가야 한다고. 난 큐브 동아리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이번 주에 동아리 신청을 하는 날이 있었는데 1학년 때 아들의 체육 선생님께서 지난주에 일찌감치 아들을 불러 풋살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들은 (풋살이나 축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풋살 동아리보다는 큐브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너는 꼭 풋살 동아리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는 바람에 선생님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결국 풋살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들을 풋살 동아리에 스카우트(?)하신 선생님은 1학년 때 아들 반의 체육 과목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이시다. 그런데 우리 아들을 많이 아껴 주시고 예뻐해 주신 것 같았다. 작년에 아들에게서 체육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았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들은 선생님과 매우 스스럼없이 지내는 듯했다.


  아들 말로는 선생님의 연세가 나보다 많으신 것 같다는데 그렇게 친근하게 아들을 대해 주시니 나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아들 반의 담임 선생님도 체육 선생님이시다. 체육 선생님들과 인연이 깊은 아들이다.




  아들이 체육 선생님과 친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그런 러브콜까지 받았다는 것은 더 신기하다. 브런치에도 글을 썼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운동에 관해서는 쥐 눈물만큼의 재능도 없기 때문에 나에게서 운동에 흥미와 소질이 있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우리 아들은 외모적으로 볼 때는 아빠보다는 엄마인 나를 더 많이 닮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운동 신경은 아빠를 닮아서인지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다. 게다가 무척 성실하기 때문에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생님께서 아들을 꼭 풋살 동아리에 넣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늘 학급 임원이었고 선생님들의 신망도 두터웠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요즘처럼 임원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출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후보가 정해진 상태에서 바로 선거를 치렀다. 만약 요즘처럼 선거에 출마를 해서 포스터도 만들고 연설도 해야 했다면 난 아마 한 번도 임원을 못해 봤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난 내가 생각해도 모범생이 분명했다. 당연히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좋았다.


  하지만 학급 임원에 모범생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작아지고 부끄러워지는 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체육 시간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체육 시간에는 열등생 중의 열등생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체육 시간에 뜀틀 시험이 있었는데 나는 '죽어도' 뜀틀을 넘지 못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볍게 잘 뛰어넘었고, 잘 못하는 친구들도 엉덩방아를 찧을망정 뛰어넘으려는 시도라도 하는데 나는 뜀틀 앞까지 다다다다 달려가다가는 끽 멈추고 뜀틀 옆으로 빙 돌아가기만 했던 것이다. 나는 그 뜀틀 넘기가 너무 무서웠다. 심지어 시험이었는데 제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엉망진창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뜀틀뿐이 아니었다. '죽어도' 못했던 두 가지가 더 생각난다. 하나는 '허들 넘기'였고, 또 하나는 '물구나무서기'였다. 역시 다 시험 과목이었는데 난 거의 포기하고 말았다.


  허들 넘기 역시 허들 앞까지 다다다다 뛰어가서는 넘지를 못하고 옆으로 휙 돌아 지나가 버렸고, 물구나무서기는 정말이지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당연히 파트너 친구가 발목을 잡아주는 거였지만 나는 친구에게 온전히 나를 맡기고 내 몸을 거꾸러뜨릴 자신감이 1도 없었다.


  이 지경이었으니 체육 실기 성적이 좋았을 리 만무하다. 그나마 필기시험으로 어느 정도 상쇄가 되어 다행이었지 만약 100% 실기시험으로만 체육 성적을 산출했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내가 체육 선생님들의 눈에는 예뻐 보였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시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여러 종목들을 시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할 수 있는데도 노력을 안 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 나를 한심하게 보셨을 것 같다. 나 역시 못하는 것들이 많은 체육 시간이 싫었고 두려웠다. 때문에 체육 시간이 시간표에 있는 날에 비라도 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의 아들이 체육 선생님의 애제자가 되다니!!!


  나로서는 정말 경이롭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내 학창 시절의 아쉬움을 아들이 채워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것인가?


  앞으로 아들이 풋살 동아리에서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도 챙기고, 선생님,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 경험들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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