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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Apr 06. 2022

나에게 슈퍼항체는 없었다

결국 만나게 된 코로나 씨

  올해 2월에 우리 집에 찾아와 남편과 아들을 괴롭히고 간 코로나 씨가 결국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때 웬일로 나만 내버려 두나 했는데 이렇게 깜짝쇼를 하고 싶어서였나? 아무튼 끈질기고 짓궂다. 이 매거진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 오후부터 이상하게 목이 살짝 간질간질, 칼칼하고 코가 매운 느낌이 났다. 환절기인 데다가 평소에 알레르기 비염이 있어서 비염 증상인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집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 두 번이나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미약하지만 의심스러운 증상이 갑자기 생긴 데다 자가진단키트를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병원으로 향했다. 어린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마음으로.


  저녁 시간이 가까운 오후라 그런지 다행히 병원이 그다지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었다. 내가 찾은 병원은 S이비인후과로 평소에 의사 선생님이 꼼꼼하게 설명을 잘해 주셔서 단골이 된 병원이다.




  "어떻게 오셨어요?"

  "목이 조금 간지럽고 칼칼해서요. 집에서 두 번이나 검사했고 음성이었는데 혹시 몰라서 왔어요."

  "네, 집에서 할 때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어요. 그럼 검사 한번 해 볼게요."


  말씀을 마치신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검사용으로 쓰이는 공포의 긴 면봉을 가지고 오셔서 검사를 진행해 주셨다... 우악!! 그런데... 지금까지 꽤 여러 번 신속항원검사며 PCR 검사를 받아 봐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분명히 코로 들어간 면봉이 어떻게 목구멍에 닿을 수가 있는 거지?!!


  "이렇게 깊이 넣어야 제대로 검사를 하는 거예요. 코만 건드리면 안 되고 목을 찔러야 되거든요. 집에서 하는 검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아셨죠?"

  "아... 네, 네......!"


  코로 들어간 면봉이 목에서 휘적대는 것을 느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나는 말을 더듬으며 겨우 대답을 했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검사자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남편에게 집에서 하는 자가진단의 허술함과 코를 거쳐 목에서 만난 면봉에 대한 충격적 무용담(?)을 열심히 카톡으로 전송하고 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낮게 속삭이신다.


  "양성이세요. 이것 좀 작성해 주세요."

    



  

  병원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주신 간호사 선생님의 배려에 감사를 느낀 것도 잠시, 금세 현타가 왔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내게도! 자가검사 두 번 모두 음성이어서 그냥 비염 증상 내지는 감기인 줄 알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주신 작은 종이에는 나의 증상을 체크하도록 되어 있었다. 인후통, 콧물, 기침 등등. 그러면 그걸 보시고 의사 선생님이 약 처방을 내리시는 것이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고 집에 왔다(약값은 무료였다.).


 '세상에, 내가 확진자가 되다니!'


  사실 요즘은 확진자보다 한 번도 확진되지 않은 미확진자가 '마이너리티(소수)'라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지만... 나는 왠지 끝까지 그 마이너리티 그룹에 속할 줄로 생각했었나 보다. 남편과 아들이 확진되었을 때도 혼자 무사히 살아남았기(!?) 때문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같고, 혹시나 정말 슈퍼 항체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슈퍼 항체는 무슨! 그러면 그렇지, 내가 그런 특별한 능력자일 리가 없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이 이번에 또 증명된 셈이다.




  집에 와서 약을 먹고 확진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일 먼저 할 일은 연락하기!


  남편에겐 진작에 연락을 했고, 그다음으로 내가 일하는 곳들에 연락을 했다. 아들도 내 확진 소식을 듣자 담임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했다. 그런데 이미 확진된 적이 있다고 하니 PCR 검사를 안 받아도 되고 자가진단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학교에 그냥 나와도 된단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이미 확진됐었던 직원은 회사에서 격리할 필요 없이 나오라고 한다고. 남편한테 우스갯소리로 '확진됐던 게 무슨 훈장 같네.'라고 했다.




  오늘 보건소에서 전화가 한 통 왔고(기저질환은 없는지, 요양시설 같은 곳 종사자인지 등을 물었다.), 곧이어 문자도 한 통 왔다. 나의 격리 기간은 다음 주 월요일 자정까지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어제 목만 조금 간질거리고 살짝 칼칼했던 나의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채로워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후기를 찾아보니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침도 못 삼킬 정도라는 내용이 많았는데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인후통이 심하진 않다. 대신에 어제는 없던 가래가 생겼고, 마른기침이 심해지고 있으며 오한과 몸살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열은 거의 없고, 두통이나 후각, 미각 소실 등은 (아직은) 전혀 없다. 게다가 식욕은 여전히 좋다.


  내가 확진됐다는 소식을 들으신 친정 부모님은 오늘 역시나 예상대로 엄청난 양의 식료품과 영양 식품을 우리 집 문 앞에 배달하고 돌아가셨다. 내가 격리 해제되는 그날까지 또 매일 무언가를 사 가지고 집에 오실 것이다.


  가래 삭이는 데는 무즙이 좋은데 내가 무즙은 잘 안 먹을 것 같다고 무를 잘게 채 썰어 무 절임 비슷하게 해서 갖다 주시기도 했다. 엄마의 정성을 봐서라도 열심히 먹어야 할 텐데. 빨리 나아서 걱정을 안 끼치면 좋겠다.

   



  남편과 아들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는 그야말로 패닉이었는데 이제는 워낙 코로나도 일상이 되어서인지 전혀 당황스럽지가 않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상황 등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남편이 골방에 갇혀 있다가 구급차를 타고 생활치료센터에 갔던 일이며 아들과 한집에 있으면서도 생이별하며 지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훨씬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내일이면 또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주일 동안 푹 쉬면서 나를 위해 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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